S2-10 별을 세다. "별빛으로 그를 알아보겠지"




S2-10 별을 세다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Violin Sonata No. 23 in D major, K.306/300l  Op. 1 No. 5 (24 mins. / 1778 / dedicated to Electress Maria Elisabeth) know as the Palatine Sonatas
I. Allegro con spirito
II. Andante cantabile
III. Allegretto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Violin Sonata No. 24 in F major, K.376/374d  Op. 2 No. 1 (18 mins. / 1781 / dedicated to Josepha von Auernhammer)
I. Allegro
II. Andante
III. Rondo. Allegretto grazioso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Violin Sonata No. 32 in B flat major, K.454 (23 mins. / 1784 / dedicated to Tereze de Kobenzl)
I. Largo - Allegro
II. Andante
III. Allegretto

"별빛으로 그를 알아보겠지"(5막 1장 - 테세우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3번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모차르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작곡했다. 초기 작품들은 피아노 소나타에 반주 악기로서 바이올린이 부가된 형태였다. 이 곡이 만들어진 1778년부터 두 악기의 관계가 밀접해지고 바이올린의 독립성과 기교에 비중을 주는 성숙한 형태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나오게 된다. 파리를 향해 가다 만하임에 머무는 동안 모차르트는 여러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만들었고 팔라틴 선제후 부인인 마리아 엘리자베트에게 헌정되어 팔라틴 소나타란 별칭이 있다.
당시 만하임 궁정의 문화적 분위기는 낭만주의의 도래를 예고라도 하듯 '질풍노도'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런 연유로 모차르트는 좀 더 자유롭고 극적인 요소를 음악에 끌어들인다. K. 306의 경우 두 악기 모두 각자의 카덴차가 있는데 오페라의 극적 장면에 나오는 독창, 즉 셰이나(scena)와 같은 효과를 전한다. 오페라에 심혈을 기울였던 모차르트는 실내악곡에서도 내러티브를 강조해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4번
놀라운 독창성과 샘솟는 듯한 창작력의 소유자, 천재 피아니스트, 모든 장르에 빼어났던 작곡가 - 모두 모차르트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더해 모차르트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비올리스트였다. 아버지 레오폴드가 빼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당대에 최고로 꼽히던 바이올린 학습서를 쓴 이였기에 아들인 모차르트가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을 썼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이전에도 언급됐지만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바이올린이 거드는 형태의 곡으로 출발해 두 악기의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변화를 보여준다.
1781년 비엔나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 출판을 위해 여섯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모았을 때 그 변화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1783년 함부르크에서 간행된 '마가진 데어 무지크'란 잡지에 실린 이 소나타곡집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이 형식의 작품들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곡들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성하며 작곡가의 위대한 천재성이 곳곳에 묻어 있다. 게다가 바이올린의 반주가 피아노와 매우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어 두 악기가 지속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소나타들은 피아니스트만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를 필요로 한다."
이 소나타곡집에 실린 곡 중에서 이 소나타가 화려함은 가장 덜하다. 1악장은 차분하고 편안한 전개 속에 풍부한 주제와 소재가 소개된다. 중간 악장은 하나의 주제에 기반을 둔 다양한 노래를 한가로이 펼쳐낸다. 론도의 마지막 악장은 우아하면서도 매력적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요 주제가 원무를 그리듯 반복하여 들린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32번
1784년 2월부터 3개월은 모차르트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네 개의 피아노 협주곡 K. 449, K. 450, K. 451, K. 453과 피아노와 관악을 위한 오중주곡 K. 452, 그리고 K. 454의 이 소나타가 함께 나왔다. 성공을 구가하던 비엔나 시기의 실내악 작품들은 대개 그가 출연하는 연주회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이는 만토바 출신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레니자 스트리나사치였다.
이 소나타는 두 악기의 균형과 조화가 절묘하게 쓰여졌음은 물론, 연주자 모두에게 매우 뛰어난 연주력을 요구하고 있다. 모차르트 전기 작가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1악장의 서주 라르고를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로 나아가는 거대한 개선문이라고 칭했다. 두 악기가 같은 양의 독립성과 즐거운 양립 속에 연주한다. 안단테의 2악장은 소나타 안에서의 위치나 표현력의 무게로 볼 때 분명한 소나타의 중심이다. 음악학자와 연주자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정교한 상호작용 앞에서 혀를 내두른다.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의 음악은 당시 비엔나 청중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깊이와 범위였기에 도리어 일종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활기찬 알레그레토의 마지막 악장은 이를 해소하는 완벽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일까, 18세기의 음악전문가인 커트버트 거들스톤은 B플랫 장조 소나타의 화려한 1, 3악장과 고요한 가운데 악장의 구조를 두고 '기쁨과 고요의 열쇠'라고 표현했다. 이 소나타에 전하는 찬사는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진다. 안네-소피 무터는 이 곡을 두고 바이올린 소나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업적'이라고 말했다. 

S2-9 아름다운 밤 하늘을 보며



S2-9 아름다운 밤 하늘을 보며

Franz Peter Schubert(1797-1828): Fantasie in C major, D.934 (26 mins. / 1827)
I. Andante molto
II. Allegretto
III. Andantino
IV. Allegro vivace - Allegretto - Presto
Robert Schumann(1810-1856): Phantasie in C major, Op. 131 arranged for violin and piano by Fritz Kreisler (15 mins. / 1853 / dedicated to Joseph Joachim)
Franz Waxman(1906-1967): Carmen Fantasy (9 mins. / 1946 / dedicated to Jascha Heifetz)
"나의 사랑이 저 하늘의 빛나는 별들보다 이 밤을 더 아름답게 번쩍이며 비추어"(3막 2장 - 라이샌더)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이 곡이 초연된 1828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 평론가는 초연 무대를 두고 "비엔나 사람들이 지적 추구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을 초과하는 길이의 작품이다. 공연장은 차츰 비워졌다. 작곡가 본인도 곡의 마무리에 대해 할 말이 없음을 실토해야 한다."라고 썼다. 이 환상곡의 자유로운 형식은 3부 소나타 형식에 익숙해있던 당대의 청취자들에게 지나치게 자유로운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또는 악평의 책임을 줄이려는 의도였는지 위의 평을 썼던 이는 자신도 마지막 악장까지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슈베르트는 제시-발전-재현이라는 변증법적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나 '선율-주제'란 덩어리를 연속으로 배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3악장 안단티노의 주제로 쓰인 선율은 뤼케르트 시에 붙인 가곡 '내 인사를 받아주오' D 741에서 가져온 것이다. 인사를 받아줘야 하는 '그대'는 더 이상 마주 앉아 얘기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존재다. 그런 까닭에 이 부분은 기묘하고 마법적인 감정의 상태에서 노래해야 하는데 주제가 여러 개의 변주로 확장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도 고조된다. 
전체적으로는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전형적인 4악장 소나타 형식이나 안단테 몰토의 1악장과 알레그레토의 2악장을 한 악장으로 간주해 전체를 3악장 구조로 파악하기도 한다. 실제 연주는 악장 간의 쉼 없이 한 번에 진행된다. 귀 기울여 들으면 이 소나타엔 매우 많은 음이 등장하는 것을, 두 연주자 모두에게 엄청난 기교가 요청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편하게 들린다면 연주자의 기량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것이다.
초연은 만족스럽지 못했어도 근 200년이 흐른 지금, 슈베르트의 환상곡은 주요 바이올린 레퍼토리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음악의 시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통찰력과 함께 명석함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청중의 환상곡의 황홀한 감정으로 인도할 수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 언어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매력적이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여도 그 속엔 측정할 수 없는 감정적 깊이가 있다. 이 환상곡의 정서는 슈베르트 가곡에서 자주 접하는 슬픔, 고통, 사색이 아니라 은은한 빛으로 발하는 낙관적 태도이다. 단순한 표면 아래 자리한 매우 복잡한 내면의 삶을 연주자는 포착해내야 한다. "간단한" 음악처럼 보이지만 정작 연주자들은 매우 높은 연주 기술의 소유자여야 한다. 쇼팽이 제 2의 파가니니라 칭했을 정도로 기교가 뛰어났던 요제프 슬라빅을 염두에 두고 이 곡이 씌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피아노 부분도 못지 않은 고난도임을 거장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말로 확인할 수 있다. "피아노를 위해 쓰여진 음악 중 가장 어렵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한데 모아놓은 것보다 더 어렵다고요."
슈만(편곡: 크라이슬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이 곡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음악으로 쓴 러브레터이다. 슈만의 원곡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었는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편곡은 크라이슬러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인 슈만이지만 바이올린을 위한 그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잊혀졌거나 심지어 작곡가 자신에 의해서 조차 무시되었다. 요제프 요아힘에게 헌정된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1930년대에 들어와서야 출판된 것도 그의 증손녀가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낸 덕분이었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은 생전에 출판되기 했어도 오늘날까지 콘서트 프로그램에 잘 오르지 않는다. 녹음도 드문 편으로 그나마 크라이슬러에 의한 바이올린과 피아노 버전이 좀 눈에 띌 뿐 오케스트라 버전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 환상곡은 요아힘의 의뢰에 따라 만들어졌다. 초연은 슈만의 지휘와 요아힘의 연주로 1853년 10월에 이루어졌다. 이듬해 1월, 요아힘은 다시 이 곡을 연주했고 같은 연주회에서 클라라 슈만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연주했다. 아마도 슈만이 절친 바이올리니스트와 아내의 연주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을 것이다. 환상곡은 고전주의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작곡가들이 즐겨 선택했던 낭만주의 시대의 전형적 악곡 스타일이었으며 슈만이 가장 좋아하는 형식이기도 했다. 이 환상곡은 일정 부분 소나타의 원리를 따라 A단조의 애절한 도입부로 시작해 바로 C장조의 명쾌한 주제가 나오고 이후 작품의 나머지 부분에 걸쳐 후렴처럼 반복된 후 종지부로 나아간다.
이 곡이 무시됐던 이유 중 하나는 슈만 말년의 작품들이 받았던 오해, 즉 작곡가의 정신적인 문제가 작품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선입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이 곡을 편곡한 이가 탁월한 선곡과 빼어난 작, 편곡 능력으로 수많은 명작을 남긴 크라이슬러였다는 점은 오해의 근거를 희박하게 한다. 자유롭고 유려하게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를 경험할 때 오해는 쉽게 불식된다. 
왁스만: 카르멘 환상곡
1919년 '코스모폴리탄'지에 패니 허스트가 쓴 <유모레스크: 눈물을 머금고 짓는 웃음의 인생>이란 제목의 단편 소설이 실렸다. 짧게 플롯을 소개한다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걷는 젊은이와 세 번의 결혼에도 여전히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부인이 주인공으로,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들은 서로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짐작하겠지만 해피 엔딩은 아니다. 열정, 갈등, 저항, 위로가 뒤섞이다 파국의 종말을 맞는 격정의 멜로드라마다. 큰 인기를 얻은 소설은 이듬해 무성영화로 만들어졌으며 26년이 흐른 후 여전히 흑백이긴 하나 멋진 음악과 함께 리메이크되었다.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높은 찬사를 받았다. 헬렌 라이트 부인 역을 맡은 조앤 크로포드가 아름다운 외모와 깊은 감정 연기로 주목을 받았고 탄식과 절망의 비가를 유모레스크(유모레스크는 낭만주의의 한복판이었던 19세기에 널리 보급된 유머러스하면서도 극적인 감정 변화가 특징인 기악곡 형식이다. 슈만도 '웃음보다는 오히려 눈물겨운 곡'이라 했으니 유머에 방점을 두기 보다는 해학을 곁들인 비극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란 역설로 풀어낸 원작과 연출도 평단의 호평을 끌어냈다. 연기, 연출 못지 않게 이 영화를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음악이다. 장본인은 음악감독 겸 작곡을 맡은 프란츠 왁스만이었다.
왁스만은 150편이 넘는 영화의 스코어를 작곡하며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계에서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다. 영화 <유모레스크>에는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로부터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트리스탄과 이졸데>),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까지 스무 곡 넘는 명곡이 등장한다. 스튜디오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원작들을 연주하는 것과 함께 왁스만은 비제와 바그너의 테마를 바탕으로 오리지널을 만들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남자 주인공의 천재성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엄청난 기교를 얹은 곡들이었다. 당초에는 콘서트, 방송, 영화를 주름잡던 당대의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으나 실제 연주는 아직 무명이었던 아이작 스턴이 맡았다. 뉴욕 타임스에 실린 영화평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음악은 실로 대단하다. 눈을 감고 가필드(극중 남주인공 폴 보레이를 연기)의 연주 장면을 듣는다면 훨씬 깊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클로즈업 장면에 나오는 손은 그의 것이 아니다. 실제 그 손가락은 알려지지 않은 어느 전문 바이올리니스트의 것이다. 매우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연주다." 사라사테 버전이 아닌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중에 영화를 본 하이페츠는 '카르멘 환상곡'을 라디오 연주회용으로 편곡을 해 달라고 왁스만에게 부탁했다. 오케스트라 파트가 확장된 작품의 초연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하이페츠는 이 곡으로 세계 투어를 했고 녹음까지 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당시 제자였던 레오니드 코간에게 이 레코드를 전했다. 큰 감동을 받고 연주까지 하고 싶었던 그는 냉전 상황에서 악보를 구할 수 없자 음반을 들으며 일일이 채보했다. 문화 부문에서나마 미국과 소련이 조금씩 교류의 물꼬를 텄던 1962년, 왁스만은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키이우의 일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첫 미국인이 되었다. 이때 코간이 그를 찾아와 오케스트라 악보를 부탁했고 이를 전달받은 코간은 후에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로 이 곡을 녹음했다. 코간은 빅토리아 뮬로바와 안드레이 코르사코프에게도 '카르멘 환상곡'을 가르쳤다. 소련 개방 이전에 망명길에 올랐던 뮬로바의 짐 속에는 마이크로 필름에 수록된 이 곡의 악보가 있었고 요절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코르사코프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이 곡을 녹음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편곡은 작곡가 자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후배 작, 편곡가들이 첼로와 오케스트라, 콘트라바스와 오케스트라, 트럼펫과 오케스트라, 비올라 솔로 및 비올라와 현악과 타악을 위한 편곡을 발표했다. 연주력 증명의 고난도 작품으로 하이페츠 시대 이후 이만한 곡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S2-8 열정의 밤



S2-8 열정의 밤

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Souvenir d'un lieu cher, Op.42 (17 mins. / 1878 / dedicated to Nadezhda von Meck)
I. Méditation. Andante molto cantabile (D minor)
II. Scherzo. Presto giocoso (C minor)
III. Mélodie. Moderato con moto (E flat major)

Eugène-Auguste Ysaÿe(1858-1931):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Ballade“ Op. 27-3 (7 mins. / 1923 / dedicated to George Enescu)
Johannes Brahms(1833-1897):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2 mins. / 1886-88 / dedicated to Hans von Bülow)
I. Allegro
II. Adagio
III. Un poco presto e con sentimento
IV. Presto agitato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니까.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는 장님으로 그려지는가 봐"(1막 1장 - 헬레나)
차이코프스키: 소중한 장소의 추억(그리운 고향의 추억)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갑작스런 이별의 아픔이 차이코프스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내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마음이 거친 음악으로 나올 법도 하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린 속살의 진주 조개가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작곡가는 고통의 마음으로 완벽한 화음과 애타는 선율의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감정을 음악으로 들을 때 듣는 이는 막힌 가슴이 뚫리는 위로를 얻게 된다. 감정이 말하도록 하는 특별한 능력이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있다. '명상', '스케르초', '멜로디'의 3악장으로 구성된 '소중한 장소의 추억'은 그 좋은 예다. 
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첫 악장은 협주곡의 느린 악장을 염두에 두고 썼다가 앞, 뒤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탈락됐던 곡이다. 협주곡의 2악장은 '칸초네타'로 교체됐는데 둘 다 "노래한다"(칸타빌레와 칸초네타)는 분위기로는 마찬가지다. 따로 쓴 '스케르초'와 '멜로디'를 '명상'과 묶어 '소중한 장소의 추억'이 만들어졌다. '소중한 장소'는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였던 나데츠다 폰 메크 부인의 영지인 브라일로프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곡가가 이곳을 방문한 기록이 없으니 곡은 온전히 본인의 상상과 상념에 바탕을 둔 결과물이다. 작곡 배경과 표제의 취지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바이올린 음악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부인은 음악과 표제 모두에 아주 흡족해 했다고 한다.
작곡가 자신은 첫 악장을 제일 마음에 들어했는데 동시에 가장 어렵게 만든 곡이라고 회고했다. 매우 빠른 '스케르초'에 이어 나오는 '멜로디'에 대해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 곡을 쓰려고 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라일락이 아직 활짝 피어있고 온갖 풀이 높이 자라던 때였다. 내 우울증은 장미가 막 피기 시작하는 걸 볼 때까지 계속되었다."
애초에 '무언가 Chant sans paroles'란 제목이 붙었던 '멜로디'는 푸른 풀과 붉은 장미의 생명력 덕분에 우울함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작곡가의 기쁨이 녹아있는 곡이라 하겠다. 글라주노프가 오케스트레이션한 관현악 버전도 유명하지만 추억의 노래를 듣는 맛으로 치자면 두 연주자가 나누는 대화가 더 감칠 맛 난다.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발라드"
1923년에 작곡된 단악장의 이 소나타는 작품번호 27의 여섯 개 소나타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작곡가가 이 곡에 대해 남긴 말이 있다. "제 상상력이 맘껏 날아다니게 했습니다. 제오르제 에네스쿠에 대한 우정과 존경, 그리고 카르멘 실비아 왕비의 궁정에서 그와 함께 한 즐거운 연주를 떠올리면서 말이죠." (카르멘 실비아는 독일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루마니아 왕과 결혼했고 재위 시절에 루마니아 금십자(적십자와 같은 기능)를 설립해 전쟁 부상자를 도왔다. 여성 교육에 앞장섰으며 그 외 많은 자선 단체를 설립했다. 음악, 미술, 문학의 여러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많은 창작시를 남겼고 루마니아 농민 사이에 전승되던 노랫말을 채집해 시로 정리하기도 했다.)
이 소나타는 2부로 구성되었다. 렌토 몰토 소스테누토 (최대한 억제하는 느낌으로 느리게)라 표시된 도입부로서의 1부는 오페라로 친다면 서창과도 같이 곧 주제가 나올 것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온음만 사용하는 음악이 급격한 도약과 추락의 선율로, 많은 불협화음과 반음계의 사용으로 진행하며 변화무쌍한 표정을 드러낸다. 1부는 알레그로 인 템포 지우스토 에 콘 브라부라(정확한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대담하게)라 표시된 이 곡의 2부로 바로 넘어간다. 3/8박자로 동요하는 듯한 부점, 더블 스톱과 트리플 스톱이 난무하는 음악이다.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빠른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끊지 않고 원활하게 이어 연주하기) 셋잇단음표의 마디를 통과한 후에는 다시 부점 리듬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32분 음표가 다닥다닥 붙어 극도로 빠르고 찬란한 느낌을 주는 코다로 끝이 난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에게 200개 넘는 곡이 헌정되었다. 드뷔시, 생상스, 쇼송, 프랑크와 같은 작곡가들도 이자이를 위한 작품을 썼다. 헌정은 헌정을 낳아 작곡가로서의 이자이는 이 소나타가 포함된 독주 바이올린 소나타집의 모든 곡을 같은 시대를 살던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헌정했다. 이 곡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의 제오르제 에네스쿠는 이자이처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후에 예후디 메누힌을 가르친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거대한 산과도 같은 베토벤 9번 교향곡 때문에 브람스가 D단조를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이는 호사가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대규모 기악 작품은 아니라 해도 이 소나타 3번에서처럼 신중하고도 단호한 필치로 D단조 활용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 근거가 희박하다. '합창' 교향곡의 긴장감과 극적 전개가 이 조성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하는 이라면 같은 조의 이 곡에서도 긴박하며 힘찬 에너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위대한 교향곡과 협주곡들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작곡가의 고고한 지성과 빼어난 장인 정신이 아름답게 결합된 작품이다.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1악장은 첫 네 마디에 악장 전체가 응축되어 있다. 상승하는 네 번째 음, 하강하는 여덟 번째 음, 빠른 음표 뒤에 이어지는 긴 음,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피아노의 불안정한 반주선이 그것이다. 신비롭게 등장하는 이 동기가 옥타브를 오르내리고, 갑작스런 포르테로 영웅적 표정을 짓는데 듣는 이의 감정도 함께 울컥한다. D장조로 마감되며 2악장으로 이어진다. 피아노가 반주 역할에 집중하는 동안 바이올린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노래를 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선율은 3/8박자 느린 왈츠 리듬으로 바뀌어 이어지고 더블 스톱을 사용해 상승하는 클라이막스에 이르렀다 다시 악장 초입의 소박한 정서로 돌아와 조용하게 끝난다.
응축된 감정의 이 악장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전 악장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종의 스케르초인 3악장은 서정적인 2악장과 폭발적인 4악장 사이에 위치한다. 앞선 두 개의 소나타가 전형적인 3악장 구조인데 3번 소나타는 이 악장 덕분에 4악장 구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고, 다른 면에서는 사람들이 간과하던 곳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변칙적인 리듬과 선율 때문에 일종의 스케르초라는 평을 듣는데 전혀 요란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평론가 한슬릭은 이 3악장을 가장 독창적인 브람스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1악장의 열정은 4악장에서 다시 나타난다. 피아노는 집약된 힘으로 음을 쏟아낸다. 두 악기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맞붙는다. 극적 고조에 올랐다가 비극적인 분위기로 하강하는 코다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이 소나타는 고전에서 낭만으로의 전이 과정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겸비한 소나타로 추앙받고 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 지휘자로 유명했던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됐다. 뷜로는 바그너의 제자이자 추종자였는데 부인이었던 코지마가 이혼 후 바그너에게 가버리자 바그너와 대척점에 있던 브람스와 친분을 쌓으며 음악적으로 지지하기에 이른다. 정통 독일 음악의 계보를 3B(바흐, 베토벤, 브람스)라 처음 일컬었던 이도 뷜로였다. 

S2-7 뜻하지 않던 이야기



S2-7 뜻하지 않던 이야기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8 in G major, Op. 30 No. 3 (18 mins. / 1801-1802 / dedicated to Czar Alexander I of Russia)
I. Allegro assai (G major)
II. Tempo di Minuetto, ma molto moderato e grazioso (E flat major)
III. Allegro vivace (G major)
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 Violin Sonata in F major (23 mins. / 1838)
I. Allegro vivace
II. Adagio
III. Assai vivace
Witold Roman Lutosławski(1913-1994): Subito for Violin and Piano (5 mins. / 1992)
"내 장미가 이렇게 빨리 시들다니!"(1막 1장 - 라이샌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8번
활기찬 움직임 속에 쾌활한 유머를 느끼게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은 작품번호 30의 세 소나타 중 마지막 곡으로 1802년 작곡됐다. 서른 두 살 베토벤이 쓴 1악장에서 기본 음계와 화성 패턴을 사용하면서도 얼마나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악기의 평등한 관계가 시도되기는 하나 바이올린의 움직임은 브라부라의 기교를 구사하는 피아노에 비해서는 비교적 단조롭다. 2악장에 붙은 '미뉴에트'란 표제는 춤과의 관련 보다는 우아한 서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체로 E플랫 장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단조로 전조되거나 리듬이 바뀌는 부분들이 대조를 이룬다. 3악장으로 넘어와서는 바닥을 움켜쥔 듯 공고한 피아노의 저음 위에 화려한 선율이 날고 두 연주자 모두 각자의 능력을 유감없이 쏟아내며 앙상블을 만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작곡가의 다른 소나타에 비해 짧은 편인데다 비장하지 않은(?) 까닭에 덜 연주되긴 하나 이 8번 소나타는 궂은 날씨가 이어지는 어느 날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전한다. 연주자들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팔을 들어 올리며 이 곡을 마무리하는 연주자들은 대개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소나타
1838년에 처음 작곡된 이 소나타는 115년이 지난 1953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왔다. 소나타에 착수했던 그 해, 멘델스존은 저 유명한 E단조 바이올린 협주곡도 쓰기 시작했다. 협주곡이 훨씬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1838년 6월에 소나타의 초안을 완성하고도 작곡가는 "형편없는 소나타"라 말하며 작업을 진척시키지 않았다. 이듬해 1악장을 고쳐 쓰기는 했는데 세상을 뜰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의 원고를 예후디 메뉴힌이 수정, 보완함으로써 출판까지 이른 것이다. 신동 소리를 들을 만큼 어린 멘델스존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모두 빼어나게 연주했다. 그의 재능은 음악에 국한된 게 아니어서 그림도 잘 그렸고 언어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 열두 살 때 괴테를 소개받고는 그에게 피아노 오중주를  헌정했고 셰익스피어 작품에 영향을 받아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쓴 게 열일곱 살 때의 일이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세 개를 남겼다. 이 곡은 그 중 마지막 작품으로 새 아내와 아기를 가졌던 시기에 착수했다.
1악장 도입부만 들어도 작곡가가 얼마나 야심찬 시도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소나타 형식 속에서 두 악기는 마치 협주곡의 독주 악기처럼 박력과 개성이 넘치는 음악을 들려준다. 알레그로 비바체의 이 악장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선율과 반주를 주고받으며 힘차게 전진한다. 1악장과 사뭇 다른 부드러움이 명상적인 2악장 아다지오를 감싼다. 완만한 흐름 속에 조용한 화음과 섬세한 선율이 이어진다. 낮은 음역을 피아노가 유지하는 가운데 바이올린이 속삭이듯 노래한다. 마지막 악장 아싸이 비바체에서는 두 악기가 솜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보인다. 풀밭 언덕을 서로 손잡고 즐겁게 달려나가는 연인을 연상케 한다. 
루토스와프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수비토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위촉을 받고 쓴 작곡가의 최후 작품 중 하나다. 짧지만 변화무쌍한 전개는 몇 마디 말로 형용이 불가능하다. 템포는 날렵하게 극단을 오가고 부드러운 노래 뒤에 기괴한 선율이 날카롭게 등장한다. 급격한 변화로 점철된 음악이다. 제목인 '수비토'는 '갑자기'란 뜻으로 이질적 요소가 짧은 길이의 음악 속에 연이어 교차하는 것을 반영한다. 자주 바뀌는 조성은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지속되는 불협화음이 듣는 이를 불쾌하게 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국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고약하고 잔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희한한 일은 '수비토'의 매력에 빠지면 계속 찾아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음식으로 따지면 발효 음식과 비슷하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수르스트뢰밍이나 푹 삭힌 홍어회를 애호가들은 정말 맛있게 먹는다. 저세상의 루토스와프스키가 뭐라 할지 모르지만 '수비토'는 그 강도로 보아 홍어회 중에서도 홍어 코에 가깝지 않나 싶다.

S2-6 사랑의 고통





S2-6 사랑의 고통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10 in G major, Op. 96 (28 mins. / 1812 / dedicated to Archduke Rudolph Johannes Joseph Rainier of Austria)
I. Allegro moderato (G major)
II. Adagio espressivo (E flat major)
III. Scherzo. Allegro (G minor) - Trio (E flat major)
IV. Poco Allegretto (G major)

Robert Schumann(1810-1856): Violin Sonata in D minor No. 2, Op. 121 (32 mins. / 1851 / dedicated to Ferdinand David)
I. Ziemlich langsam - Lebhaft
II. Sehr lebhaft
III. Leise, einfach
IV. Bewegt


"사랑하는 이의 손에 죽을 수 있다면 지옥의 고통도 천국의 기쁨이 될 테니"(2막 1장 - 헬레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0번 G장조, Op. 96
베토벤이 쓴 열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마지막 작품이다. 7번과 8번 교향곡 직후에 발표되어 그의 중기 시대를 마무리하는 곡이기도 하다.
베토벤 사후 그의 서랍 속에서 날짜만 적힌 연애 편지 세 통이 발견됐다. 흔히 '불멸의 연인'으로 알려졌던 이에게 보내려던 이 편지의 수신자는 후에 안토니 브렌타노로 밝혀졌다. 베토벤이 결혼까지 꿈꿨던 이였다. 편지 내용은 절절하다 못해 남사스럽기까지 하다. 10번 소나타가 발표되었던 해인 1812년 7월 6일과 7일자의 편지 내용 일부를 들여다보자. "나의 천사, 나의 전부, 나 자신인 그대여... 어제나 오늘이나 나를 사랑해 주세요. 얼마나 당신을 눈물로서 그리워하는지 - 당신은 나의 인생, 나의 전부 - 안녕. 오, 계속 나를 사랑해 주세요. 당신의 사랑이 보내는 지고의 충성된 마음을 의심하지 마세요, L(당연히 루트비히의 첫 알파벳). 언제나 그대와 함께. 언제나 나와 함께. 언제나 우리 사랑과 함께." 애절한 마음은 음악 언어로 승화되어 소나타 10번에 등장한다. 브렌타노를 향했던 절망적인 숭배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작곡가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개인적 문제의 극복과 새로운 음악의 창작을 위한 심오한 숙고의 시간이었다.
사랑의 고통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깝게 붙어있는 것 같다. 1812년 12월에 초연된 이 작품은 밝고 활기찬 첫 인상 뒤로 고요한 표정이 군데군데 자리한다. 초연을 맡은 이는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삐에르 로드와 작곡가의 관대한 후원자였던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이었다. 당초 빠르고 화려한 음악으로 채우려던 마지막 악장은 루돌프 대공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는지 가볍고 예쁜 테마에 이은 변주곡으로 바뀌었다. 중기 시대의 걸작인 바이올린 소나타 10번은 가벼운 재치와 유머로 마무리된다. 이 소나타는 베토벤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낭만적인 작품의 하나로 종달새의 노랫소리, 알프스 목동의 나팔소리와 같은 전원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1악장의 도입부가 그러한데 곧이어 연인의 대화와 같은 대목이 반복되고(내버려 두었더라면 지금의 12마디가 아닌 120마디로 늘였을지도 모른다) 발전과 재현을 거쳐 코다로 나아간다. 코다는 첫 주제에 바탕을 둔 두 번째 발전부이기도 하다.
음악학자 드미트리 스미로노프에 따르면 10번 소나타의 2악장은 "세상 모든 음악에서 가장 심오하고, 가장 진정성 있으며 가장 숭고한 작품 중 하나"다. 소나타 형식과 작은 론도의 형식을 함께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주제는 피아노에 의해서만 들려지고 바이올린은 주제의 마지막 부분에 'sotto voce'로, 즉 아주 고요한 몸짓으로 얹힌다. 새로운 주제가 나오고 바이올린은 'espressivo'로, 즉 넘치는 표정으로 노래한다. 중간부는 이 노래의 연장으로서 발전부에 해당한다. G단조인 스케르초 3악장으로의 연결을 암시하듯 E 플랫 장조를 주성조로 하는 2악장은 G를 거쳐 C샵으로 마무리된다. 남성적인 스케르초 악장의 시작은 민속 춤을 연상케 한다. 샵과 강렬한 액센트의 스케르초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왈츠 풍의 트리오로 넘어간다. 2부 구성의 노래처럼 두 악기가 주선율을 번갈아 연주하고 트리오로 확장돼 3부 구성의 노래처럼, 또 돌림노래같은 카논과 론도인 듯 세 개의 다른 목소리가 네 마디마다 자리를 바꿔 주제를 연주한다. 스케르초가 다시 등장하고 이어서 코다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악장은 즐거운 주제의 제시에 이어 8개의 변주로 구성된 악장이다. 주제가 제시되는 방식은 이전 악장과 같다. 두 악기가 주고받듯 노래하며 주제를 연주한다. 마지막 8번째 변주는 이전 변주들 보다 훨씬 긴 51개 마디로 구성되어 코다의 역할까지 한다.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2번 D단조, Op. 121
첫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나온 2번 소나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광기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지친 마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평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에는 불안과 우울과 분열된 서정성이 들어차 있다. 멘델스존 및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드에게 헌정되었으나 초연은 요제프 요아힘과 클라라 슈만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로 두 연주자는 수십 년에 걸친 음악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다. 요아힘은 이 곡을 받아들고 감격에 겨워 괴팅엔의 음악감독이었던 아르놀트 베너에게 편지를 썼다. "클라라가 얼마나 슈만의 음악을 잘 표현하는지 아실 겁니다. 바로 그녀와 함께 슈만의 작품을 연주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곧 출판될 D단조 소나타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작품의 주제, 그리고 놀랍도록 고양되는 감정의 전개로 판단할 때 가히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고귀한 열정이 넘치는 가운데 거칠고 씁쓸한 표현이 있고 특히 마지막 악장은 찬란한 음향의 물결로 이루어진 바다를 연상하게 합니다."
작품은 장엄하고 느린 도입부로 시작한다. 선율은 이 악장의 중심이기도 한 첫 주제의 윤곽을 그린다. 보다 확대된 두 번째 주제가 첫 주제와 감정의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격동의 발전부에서 두 주제가 모두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마지막에 다다르면 그 음악적 동요가 더 커진다. 전작인 A단조 소나타가 간주곡 같은 느린 중간 악장으로 간결한 구조를 만들었다면 이 소나타는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두 개 악장이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론도 형식의 2악장은 두 개의 트리오를 가진 스케르초 악장이다. 이 악장의 말미에 두 연주자의 강렬한 포르티시모로 중세 독일로부터 전승된 멜로디에 기초해 마르틴 루터와 요한 발터가 정리한 코랄, "찬양 받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입부 선율이 등장한다. 3악장은 이를 주제로 한 부드러운 변주곡으로 구성되었다. 스케르초에서 주어졌던 소재가 3악장에서 다양한 변주로 재현되며 이 두 악장이 서로 공고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혹자는 3년 뒤 브람스가 발표한 F샵 단조의 피아노 소나타를 떠올릴 것이다. 여기서는 느린 악장에 나타났던 동기가 스케르초 악장에서 중심 주제로 나타나는 충격적인 모습이 연출된다.
마지막 4악장은 16분 음표의 활발한 움직임을 지닌 소나타 형식이다. 요아힘의 표현처럼 '찬란한 음향의 물결'이 있는 피날레는 꽤나 소란스럽다. 1악장과 달리 4악장에서는 좀 더 서정적인 두 번째 주제가 음악의 지배적 감정인 강렬함을 진정시키고 안도감을 제공한다. 이 감정이 마지막까지 이어져 작품 전체를 훌륭하게 마무리한다. 

S2-5 사랑의 결실



S2-5 사랑의 결실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7 in C minor, Op. 30 No. 2 (26 mins. / 1801-1802 / dedicated to Tsar Alexander I of Russia)
I. Allegro con brio (C minor)
II. Adagio cantabile (A flat major)
III. Scherzo. Allegro - Trio (C major)
IV. Finale. Allegro (C minor)
César-Auguste Jean-Guillaume Hubert Franck(1822-1890): Violin Sonata in A major CFF 123, FWV 8 (28 mins. / 1886 / dedicated to Eugène Ysaÿe)
I. Allegretto ben moderato (A major)
II. Allegro (D minor)
III. Recitativo-Fantasia. Ben moderato - Molto lento (ends in F sharp minor)
IV. Allegretto poco mosso (A major)
"모두 영원히 진실하게 사랑하라"(5막 2장 - 오베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 C단조, Op. 30 No. 2
작품 번호 30의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은 1803년에 "바이올린 반주가 있는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란 제목으로 출판됐다. 악기에 대한 당시의 관념이 반영된 표현이었다. C단조 소나타의 네 개 악장은 모두 피아노 솔로로 시작하며 주제의 제시도 피아노가 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목처럼 바이올린이 부수적인 역할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란 악기가 드라마틱한 힘으로 음악을 밀고 나갈 때 바이올린은 서정적인 소리로 그 힘을 보듬어 안는 구조이다. 
작곡 당시 베토벤은 점점 더 심해지는 청각 장애로 고통받고 있었다. 장애에 대한 베토벤의 음악적 대응은 고유성을 강조하며 혁신과 창조를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로 중기 베토벤의 중량감 넘치는 여러 역작이 나왔다. 교향곡은 물론 실내악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성은 두드러져 강한 힘을 느끼게 한다. 이는 동시에 베토벤이 던지는 영적 질문 내지 그가 걸어갔던 정신적 여정으로도 다가온다.
이 소나타는 베토벤 중기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 곡이 갖고 있는 추진력은 그가 지향했던 '교향적 이상'을 보여준다. 1악장은 서로 대비되는 조성과 주제를 등장시켜 갈등을 고조시키고 조화로운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이 소나타 형식에 담겨있다. 정교한 움직임으로 부드럽게 시작하여 거의 모든 단계에서 거친 대조를 이루다가 분노를 토하며 끝난다. 따뜻한 노래와도 같은 2악장은 이 소나타와 별도로 쓰여졌던 G장조의 스케치를 이 소나타에 포함하면서 조성이 바뀌었다. 3악장 스케르초는 1악장의 C단조와 대조를 이루며 폭발하다가 트리오로 마무리된다.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이 있어 다소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전기작가 안톤 쉰들러에 따르면 다른 악장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3악장 넣은 것을 베토벤이 후회했다고 한다.
마지막 악장은 또 다른 격동의 장이다. 작은 여러 부분들이 1악장과의 연계 속에 대조를 이룬다. 이 당시 베토벤의 스타일로 자리 잡아 가던 것 중 하나는 세밀한 부분에 가능한 많은 함의를 부여하고 이를 곡 전체로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이 경이로운 악장은 베토벤 음악이 고도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전 악장의 모든 것들로부터 누적된 힘과 의미가 이 악장의 마디 마디를 통해 끌려 나와 폭풍우처럼 몰아친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작곡가 프랑크를 유명하게 한 곡 중 하나이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쓰인 최고의 소타나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가 높이 평가했던 고전주의 전통과 풍성한 벨기에-프랑스의 음악 언어가 결합된 걸작이다. 작곡가가 63세였을 당시 28세였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외젠 이자이의 결혼 축하 선물로 쓰여졌다. 기록에 따르면 이보다 28년 전인 1858년에 코지마 폰 뷜로에게 바이올린 소나타를 써주겠다고 약속했다 하는데 이 약속이 지켜졌다는 증거는 없고 결국 이자이에게 준 이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프랑크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자이는 짧은 리허설을 마치고 결혼식에서 이 곡을 직접 연주했다고 한다.
대중 초연은 그 해 12월에 브뤼셀 근대 미술관에서 열렸다. 오후 3시에 시작한 긴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 이 소나타였는데 곡이 연주될 즈음에는 해가 저물기 시작해 미술관 내부가 어두컴컴했으나 미술관 측은 조명 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암보로 연주하게 됐는데 1악장의 빠르기가 작곡가가 지정한 것보다 빨랐다고 아르망 빠랑이란 바이올리니스트가 프랑크에게 일렀던 모양이다. 여기에 대해 프랑크는 이자이가 옳은 결정을 했으며 앞으로는 "이자이의 방식대로 이 곡이 연주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자이는 이후로 그의 삶이 다 할 때까지 이 곡을 연주했고 덕분에 사람들은 프랑크를 주요한 작곡가로 인식하게 됐다. 이 소나타는 다른 작품과 비교해 피아노 파트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아주 큰 손을 가졌던 프랑크는 본인 기준에서 별 문제 없지만 대부분의 피아니스트에게는 당혹스러울 정도의 확장된 도약을 악보에 써넣었다. 특히 2악장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순환을 이룬다. 모든 악장이 공통된 주제의 끈을 붙잡고 있다. 한 악장의 주제는 후속 악장에 변형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프랑크는 코지마 폰 뷜로우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프란츠 리스트로부터 이 테크닉을 배워 적용했다. 프랑크의 제자였던 뱅상 댕디는 "소나타 형식을 바탕으로 순환적으로 주제를 사용한 처음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이 소나타가 "진정한 음악적 기념비"라고 평했다.
느리고 빠른 악장이 번갈아 나타난다. 1악장은 애초에 작곡가가 상당히 느린 전개를 의도했지만 좀 더 빠른 템포를 원했던 이자이 덕분에 오늘날과 같은 알레그레토가 되었다. 종종 격동의 2악장이 이 소나타의 진정한 도입 악장으로 여겨진다. 이 경우 알레그레토 벤 모데라토의 1악장은 긴 도입부로 간주된다. 3악장은 본질에 있어 즉흥적이며 구조와 표현에 있어 모두 자유롭다. 4악장의 주요 선율은 두 악기가 차례로 이어받는 카논 형식으로 나타난다. 론도의 방식으로 주제가 재현, 반복되면서 영웅적 비상을 하며 곡이 마무리된다. 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 작곡가에 대한 연구로 저명한 저술가 제임스 하딩은 이 악장이야말로 "풍성하며 아름답게 조탁한 비율 위에 간결하면서도 장엄하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내는 카논 작법이 적용된 매우 훌륭한 예"라고 극찬했다.


S2-4 여름의 아침



S2-4 여름의 아침

Jean-Marie Leclair(1697-1764):  Violin Sonata in D major, Op. 9 No. 3 (11 mins. / 1743 / dedicated to Princess Anne of Orange in the Netherlads)
I. Un poco andante
II. Allegro - Adagio
III. Sarabande. Largo
IV. Tambourin. Presto

Leoš Janáček(1854-1928): Violin Sonata, JW VII/7 (18 mins. / 1914-1922)
I. Con moto
II. Ballada
III. Allegretto
IV. Adagio

Antonín Leopold Dvořák(1841-1904): Four Romantic Pieces, Op. 75, B. 150 (16 mins. / 1887)
I. Allegro moderato (B flat major)
II. Allegro maestoso (D minor)
III. Allegro appassionato (B flat major)
IV. Larghetto (G minor)

Eugène-Auguste Ysaÿe(1858-1931): Violin Sonata No.6 in E major, Op. 27-6 (7 mins. / 1923 / dedicated to Manuel Quiroga)
I. Allegro giusto non troppo vivo

"아침을 알리는 종달새 노래가 들립니다"(4막 1장 - 퍽)
르클레르: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9-3
르클레르의 아버지는 레이스 만드는 장인이자 훌륭한 첼리스트였다. 르클레르는 이 가족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였다. 바이올린 연주와 작곡으로 유명해지기 전, 어린 르클레르는 가업인 레이스 장인 훈련을 받았고 전문 무용수로도 활동했다. 형제 중 세 명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는데 장-마리 르클레르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 장-마리가 또 한 명 있는데 이름 앞에 '막내 le cadet'를 붙여 구별한다. 르클레르의 첫 아내는 무용수였고 두 번째 아내는 판화작가였다. 출판되었던 작품번호 2번에서 15번까지의 모든 작품을 두 번째 아내가 판각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루이즈도 판화작가가 되었고 화가인 루이 퀴네와 결혼했다. 르클레르의 조카인 바이올리니스트 귀욤-프랑수아 비알이 그를 살해했다는 증거가 많았으나 기소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르클레르는 프랑스 바이올린 악파의 태두로 여겨진다. 하지만 활동하던 당대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스타일을 하나로 묶은 공로를 높이 평가 받았다. 그의 네 번째 바이올린 소나타곡집인 작품번호 9번은 몇 년간 계절적으로 고용 관계를 유지했던 네덜란드 오라녜(오렌지) 왕가의 안나 왕녀에게 헌정됐다. 이 곡집의 세 번째 소나타는 르클레르의 민족적 스타일과 기교를 동시에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더블 스톱이 많은데 아름다운 선율과 경쾌한 리듬이 사용된 곡이다. 느림-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교회소나타 4악장 구조에 프랑스 춤곡인 사라방드와 탕부랭을 활용해 두 나라의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섬세한 악상 변화를 우아한 선율로 노래하고 경쾌한 리듬 속에 대비되는 동기들이 여름 아침의 상큼한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야나체크: 바이올린 소나타
라이프치히 콘서버토리 학생 시절에 야나체크가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전하지는 않는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에 대한 첫 시도로부터 거의 35년이 흘렀을 때, 작곡가는 열정적으로 여러 실내악 작품을 썼다. 야나체크의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 작곡 시점은 1차 세계대전 와중이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1914년) 복잡한 내 머릿속에서는 쇠가 갈리는 소리만 들려왔죠." 이 곡은 짧은 동기들, 템포의 빠른 변화, 강렬한 감정 표현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전형적인 후기 야나체크 스타일의 정수가 담겨 있다. 첫 악장은 열정적이며 서정적이다. 강렬하게 상승하는 바이올린과 트레몰로를 동반한 긴장감 넘치는 피아노의 서정적 멜로디가 이어지고 고뇌에 찬 절정으로 치달은 후 도입부의 재현으로 나아간다. 두 번째 악장은 민요의 단순한 동기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바이올린의 선율을 피아노의 분산화음이 뒷받침한다. 3악장 알레그레토는 매우 독특한 2분 짜리 스케르초이다. 마지막 악장인 아다지오는 긴장된 클라이맥스를 품고 있지만 시작과 끝은 아무도 없는 황무지에 서 있는 느낌이다.
드보르작: 네 개의 낭만적 소품
드보르작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관점에서 역설적인 존재다. 30대 중반에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개인적 취향과 음악 미학은 어린 시절부터 지향했던 단순함의 아름다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그는 동시대 문화인들이 겪었던 불안, 노이로제, 격동의 감정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소박하고도 깊은 신앙심의 가톨릭 신자였기에 감정적 균형을 유지하며 즐거운 삶을 살았던 그는 헨델, 하이든, 멘델스존과 함께 가장 행복하고도 건강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유럽 음악계가 그의 작품을 열렬히 탐구했지만 문화 엘리트들 사이에서 드보르작은 전혀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대신 그를 행복하게 한 것은 가족과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 자연과의 교감, 철도와 기차에 대한 열정적 관심이었다.
한 사람이 위대한 재능과 진정한 겸손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드보르작은 "하나님, 사랑, 조국"이라는 모토 아래 재능과 겸손을 조금의 모순 없이 구현해냈다. 드보르작에게 최고의 축복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부부는 1875년과 1877년 사이에 외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가슴 찢는 슬픔의 결과는 1877년 겨울의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로 나타났다. 절망적 충격이 찾아오긴 했어도 작곡가로서의 드보르작은 1870년 대의 십 년을 성공의 연속으로 보냈다. 당대 최고의 출판사인 짐록과 계약했고 유럽 전역에서 평단의 찬사가 이어졌다. 동시대를 살았던 브람스, 슈만, 바그너의 영향을 받았지만 현악 작품에서 발현된 독창적인 기법, 민족 정서에 바탕을 둔 아름다운 선율과 같은 드보르작만의 특성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로써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놀라운 정교함이 어우러져 드보르작 내면의 감정 세계는 일반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직조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낭만적 소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비올라를 위한 바가텔, Op. 75a의 개작이다. 드보르작은 자기 집에 하숙하던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Op. 74의 '테르제토'를 써줬는데 이 곡이 연주하기 너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자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다시 쓴 것이 Op. 75a의 '바가텔'이었다. '네 개의 낭만적 소품'에는 이처럼 자애로운 작곡가의 마음이 이어진 결과다. 단순하면서 매력적이고, 2악장에 흐르는 보헤미안의 정서를 필두로 모든 악장에서 풍겨나는 서정적 향기가 아름답다.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6번
이자이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영감을 받아 여섯 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썼다. 그 중 마지막 곡인 이 6번은 가장 덜 바흐스러운 작품이다. 하바네라 풍으로 쓰여졌으며 폭풍처럼 몰아치는 중간부, 극단적으로 음계를 오르내리는 스케일과 풍부한 질감으로 뇌리에 깊이 박히는 곡이다.
벨기에 리에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자이는 리에주 콘서버토리에서 로돌페 마싸르에게 배웠는데 최우등상을 받은 그를 두고 마싸르는 "이자이는 마치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주한다."란 평을 남겼다. 이자이가 음악적으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비외탕과 비에니야프스키였다. 30대 중반 나이로 독주자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는 와중에 이자이는 자신의 현악사중주단을 만들고 자기 이름을 건 콩쿠르까지 열었다. 브뤼셀 콘서버토리 교수를 역임한 후,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미국에서 신시내티 심포니를 지휘하기도 했다. 브뤼셀 콘서버토리에서는 학장의 자리에 올라 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연주자, 교육자로서의 이자이는 널리 알려졌지만 작곡가로서의 그는 최근까지도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란 인식 때문에 (극도로 연주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만이 종종 소개되는데 그가 남긴 작품 중 출판된 것으로는 한 개의 오페라, 17개의 협주곡, 다수의 실내악곡, 다수의 바이올린 편곡과 카덴짜 등이 있고 출판되지 않은 작품에도 전주곡, 왈츠, 마주르카, 7개의 협주곡 등 여러 곡이 있다. 이자이 음악은 이제 막 소개되기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S2-3 사랑에 미치다



S2-3 사랑에 미치다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9 in A major, Op. 47 „Kreutzer“ (43 mins. / 1802-1804 / dedicated to Rodolphe Kreutzer)
I. Adagio sostenuto (A major) - Presto (A minor)
II. Andante con varizaioni (F major)
III. Finale. Presto (A major)
Richard Strauss(1864-1949): Violin Sonata in E-flat major, Op. 18 (30 mins. / 1887-1888)
I. Allegro, ma non troppo
II. Improvisation: Andante cantabile
III. Finale: Andante - Allegro
"제 귀는 당신 노래에 반했고 제 눈은 당신 모습에 홀렸어요"(3막 1장 - 티타니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고난도의 기교로 풍부한 감정선을 그리며 40분 넘게 연주해야 하는 크로이처 소나타는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작품이다. 애초에는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나중에는 당대를 주름잡던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로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정됐으나 정작 크로이처는 이 작품을 싫어해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브리지타워는 베토벤과 함께 이 곡을 초연했던 인물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술자리를 갖던 중 베토벤이 흠모하던 여성에게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둘 사이가 틀어졌고 결국엔 헌정 대상이 바뀌었다.
아다지오 1악장은 솔로 바이올린의 느린 도입부로 시작해 피아노가 어두운 단조의 음을 들려주고 이 악장의 실질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는 분노에 찬 프레스토가 나온다. 템포와 조성은 두 악기의 치밀한 연결 속에 변화를 지속하고 다시 아다지오로 돌아와 고뇌에 찬 코다로 마무리된다. 2악장은 잔잔한 F장조의 멜로디와 다섯 개의 독특한 변주곡으로 이루어진다. 트릴로 장식한 생동감 넘치는 첫 변주,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면서 활기찬 두 번째 변주, 어둡고 명상적인 F단조의 세 번째 변주, 가볍고 장식적이며 시원한 바람과도 같은 흐름 속에 첫 두 변주를 회상하는 네 번째 변주, 그리고 느리면서 극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다섯 번째 변주가 끝나면 다시 F장조의 편안함으로 되돌아와 악장이 끝난다. 고요하게 마무리된 2악장의 분위기는 피아노가 A장조의 큰 화음을 울리는 3악장의 시작으로 사라지고 6/8박자의 타란텔라 리듬으로 활기차게 전환된다. 대비되는 에피소드가 연속되고 주제로 돌아온 후 쇄도하는 A장조의 음으로 곡은 즐겁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일생을 통해 베토벤과 크로이처는 단 한 번 스치듯 만났다고 한다. 둘 사이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곡을 헌정받은 크로이처는 정작 이 곡을 "터무니없으며 이해할 수 없는" 작품으로 여겼다. 한편 80여 년이 흐른 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곡에서 영감을 받아 <크로이처 소나타>란 소설을 출판했다. 여러 연극과 영화로 개작된 소설 덕분에 베토벤의 소나타 또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곡을 처음 헌정받았던 조지 브리지타워를 소재로 미국의 계관 시인인 리타 도브가 <소나타 물라티카(직역하자면, 혼혈 소나타)>란 시집을 펴낸 것은 2008년의 일이다. 카리브 해의 흑인, 폴란드인과 독일인의 피를 이어받은 조지 브리지타워의 삶을 (소나타의 악장처럼) 주제별로 다섯 개의 장에 나누어 실었다. 소나타 물라티카란 제목은 베토벤이 처음 이 곡에 붙였던 이탈리아어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렇게 씌어있었다. "위대한 야생의 작곡가, 혼혈 남성 브리쉬다우어(브리지워터)를 위해 쓴 소나타 물라티카" 정치적 올바름이 시대의 규범인 오늘날, 이와 같은 제목을 달았다면 아마도 철퇴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곡이 전하는 분위기나 표제가 바뀐 정황을 참고할 때, 이 곡은 크로이처 소나타보다 소나타 물라티카가 더 어울리는 것으로 보인다.
R.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슈트라우스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관현악곡, 오페라, 가곡으로 유명하다. 당대에는 가장 뛰어난 지휘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작곡가 자신은 빼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다. 그 증거가 불과 23살 나이에 작곡한 기교 넘치는 이 소나타에 담겨 있다.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미 두 개의 교향곡, 두 개의 협주곡, 두 개의 피아노 트리오, 피아노 사중주, 현악 사중주, 첼로 소나타와 다수의 가곡을 발표한 뒤에 나온 작품이니까.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교향시 - 돈 후안, 죽음과 변용, 맥베스 - 에 착수하기 바로 전에 완성됐다. 교향시 작품들의 조밀한 질감과 탁월한 기악적 효과는 지금도 탄성을 자아내는데 이는 이전의 기악 작품들에서 이미 드러났던 것이다. 일찌기 소나타 형식을 시대에 뒤떨어진, 껍데기만 남은 것으로 여겼던 슈트라우스지만 실내악 작품은 대개 이 형식으로 썼다. 대신 형식에 봉사하는 방식이 아닌 풍부한 주제를 정교하게 직조해내는 데 초점을 뒀다.
1악장은 피아노 솔로의 간결한 주제로 시작한다. 이어서 바이올린 서정적인 선율을 들려주면서 주제가 제시된다. 안단테 칸타빌레의 2악장은 특이하게도 '즉흥연주'란 표제가 붙었는데 고요하게 읊조리는 바이올린이 즉흥적인 노래를 닮은 것에 연유한다. 그 노래는 악장 내내 이어지고 명상적인 분위기에서 끝난다. 3악장은 느리고 정석적인 움직임의 피아노로 시작해 활기찬 알레그로로 이어진다. 화려한 기교로 두 연주자가 쏟아내는 음이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폭발과도 같은 정점을 지나며 끝난다. 1악장과 3악장의 알레그로는 고결하며 당당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베토벤의 '에로이카' 교향곡, 슈트라우스가 나중에 쓴 교향시 '영웅의 생애'와 같은 E 플랫 장조로 쓰여졌다.
슈트라우스가 이 곡을 썼을 때는 나중에 부인이 된 소프라노 파울리네 드 아나를 처음 만났을 때이다. 풍성한 서정에 휩싸인 곡에서 낭만적 열정의 암시를 듣는 것이 어렵지 않다. 황홀하고도 긴 호흡의 가운데 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특히 그러하다. 이 악장은 후에 독립적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높은 인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작곡가가 이를 허락했던 점에 비춰보면 슈트라우스 자신도 이 악장이 연인을 향한 사랑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S2-2 사랑의 열정



S2-2 사랑의 열정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Violin Sonata No. 6 in A major, Op. 30 No. 1 (22 mins. / 1802 / dedicated to Tsar Alexander I of Russia)
I. Allegro (A major)
II. Adagio molto espressivo (D major)
III. Allegretto con variazioni (A major)
Johannes Brahms(1833-1897): Violin Sonata No. 2 in A major, Op. 100 "Thun", "Meistersinger" (20 mins. / 1886)
I. Allegro amabile (A major)
II. Andante tranquillo - Vivace - Andante - Vivace di piu - Andante - Vivace (F major)
III. Allegretto grazioso (quasi andante) (A major)
Camille Saint-Saëns(1835-1921): 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in A minor, Op. 28 arr. for Violin and Piano by Georges Bizet (10 mins. / *1863-1870 / dedicated to Pablo de Sarasate)
"연인들과 광인들 머릿속엔 엉뚱한 환상이 들끓고 있어"(5막 1장 - 테세우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6번
비엔나 시절, 젊은 베토벤은 빼어난 피아노 연주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1800년대 초에 이르러 피아노는 급속도로 보급됐고 가정 음악회를 위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요구도 함께 늘었다. 베토벤이 남긴 열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아홉 곡은 1797년과 1803년 사이 6년 동안 쓰여졌다. 지금은 '바이올린 소나타'라 부르는 곡이 애초에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베토벤의 작품도 그 흐름에 맞춘 결과물이었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로 예술성과 작곡 기법에 있어 교향곡의 경계를 극적으로 돌파할 즈음에 이 소나타가 만들어졌다. 동시에 이 시기는 청각장애의 고통이 시작되고 해를 넘길수록 그 증상이 심화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로 갈등하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1801년에 의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은 절망감을 토로한다. "지난 3년간 청력이 계속 나빠졌습니다. 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작곡가인 내가) 귀머거리 임을 알릴 수 없어 지난 2년간 그 어떤 모임도 피했습니다." 의사의 조언에 따라 베토벤은 조용한 곳을 찾아 그 이듬해 비엔나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로 이주한다. 여기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로 알려진 글을 쓰는데 먼저 자살에 대한 생각이 적혀 있고 이어서 만들어야겠다고 느낀 작품을 모두 내놓기 전에는 세상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이 쓰여 있다. 고뇌의 심연에서 일어선 작곡가는 우선적으로 작품 번호 30에 묶인 세 개의 소나타를 출판하기에 이른다.
전체로는 여섯 번째, 작품 번호 30의 작품에서 첫 번째인 이 소나타는 이전 세대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궤를 달리 하는, 대단한 개성이 돋보인다. 일군의  요소의 유기적 결합체라 할 수 있는 1악장의 첫 주제를 들으면 베토벤의 개성과 자유를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주제는 노래의 성격이 강하여 대조를 이룬다. 발전부에서 두 주제는 베토벤의 추진력에 힘입어 고조된 후 마무리된다. 2악장 아다지오의 매력은 긴 호흡의 D장조 주제가 B단조로 바뀌는 마법의 순간에 있다고 할 것이다. 변조의 장인이었던 슈베르트에게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마지막 악장은 주제와 여섯 개의 변주로 구성되었다. 변주곡이란 영역에서 베토벤이 이룬 업적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독창성과 악기의 앙상블이란 측면에서 베토벤 중기를 특징 짓는 걸작이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세 곡 중 가장 짧고 또 서정적이지만 연주하기는 매우 까다롭다. 스위스의 튠에서 작곡되어 '튠'이란 별명이 있고 1악장의 첫 세 음이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에 나오는 발터의 아리아를 연상케 한다 하여 '마이스터징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지휘자이자 교육자였던 요제프 요아힘과 브람스는 각별한 관계였다. 낯가림 심한 브람스를 슈만에게 소개한 장본인이 그였다. 중간에 둘 사이가 틀어진 일이 있었다. 요아힘이 아내였던 아말리에 슈네바이스를 간통 혐의로 고소하자 그녀의 결백을 믿었던 브람스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고 이혼 소송에서 이 편지가 피고 측에 유리한 증거로 채택되는 바람에 격노한 요아힘이 브람스와 인연을 끊은 것이다. 거의 6년을 교류 없이 지내던 끝에 브람스는 친구의 마음을 돌리고자 바이올린을 위한 일련의 작품에 착수하게 된다.
브람스는 1886년 여름을 베른 근처의 소도시 튠에서 보내고 있었다. 시인 클라우스 그로트와 젊은 콘트랄토 가수 헤르미네 슈피스가 그를 찾아 왔다. 그로트와 브람스 모두 그녀를 좋아해 이 3인방은 시골길로 산책을 가거나 배를 빌려 호수를 가로질러 노를 저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름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에 고무된 브람스는 이 지역이 "너무 많은 멜로디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요아힘에게 보낸 짧은 엽서에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흥미 있어 하기를 바라는 예술 작품으로 소식을 전하고 싶다." 브람스가 이때 기울였던 노력의 결과는 이중 협주곡 Op. 102였다. 이 곡은 결국 요아힘과의 재회에 도움을 줬다. 튠에 머무는 동안 브람스는 첼로 소나타 2번, 피아노 트리오 3번, 여러 개의 가곡을 썼고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스케치를 만들었으며 서정적 분위기의 이 곡,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작곡가의 내성적 성격과 사색적인 면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피아노는 부드러운 화음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선율을 노래한다. 주제는 두 악기 사이를 매끄럽게 흐르고 긴장을 자아내는 발전부를 거쳐 도입부의 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두 번째 주제의 동기는 그 해 여름에 썼던 가곡 '멜로디가 나를 이끄는 것처럼'에서 따왔다. 가사를 쓴 이는 그로트였고 작곡가가 염두에 뒀던 가수는 다름 아닌 슈피스였다. 2악장에서 브람스는 아다지오와 스케르초의 역할을 모두 보여준다. 평온한 안단테에 이어 민요조의 비바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마지막 악장 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는 폭발하는 격정과 빠르게 변화하는 감정의 순간을 우아한 론도로 펼쳐낸다. 클라라 슈만이 이 악장을 두고 남긴 말이 유명하다. "이 땅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여정에 이 마지막 악장과 함께 간다면 좋겠다."
생상스(편곡 조르주 비제):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원래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강렬한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쓰였다. 작곡가가 가장 좋아했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블로 데 사라사테가 1867년의 초연 무대를 연주했다. 지휘자는 작곡가 자신이었다. 1869년에 생상스는 조르주 비제에게 오케스트라 악보를 주며 이 곡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편곡을 의뢰한다.
선율에 대한 탁월한 감각과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재능을 가진 그의 뛰어난 음악 장인 정신은 깊이가 요구되지 않는, 동시에 화려한 기교와 음향을 선보이는 무대 작품에 이상적이었다. 느린 서주에서는 열정이 결여된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선율이 우아하게 펼쳐지고 몰아치는 론도 카프리치오소에서는 절정의 기교와 포효하는 노래가 결합된다. 화려하기 그지 없는 음악예술이다. 

S2-1 여름의 낭만



S2-1 여름의 낭만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Violin Sonata No. 20 in C major, K. 303 (293c) (9 mins. / 1778 dedicated to Maria Elisabeth, Electress of the Palatinate)
I. Adagio - Allegro molto - Adagio
II. Tempo di menuetto
Edvard Grieg(1843-1907): Violin Sonata No. 3 in C minor, Op. 45 (25 mins. / 1887 / dedicated to Franz von Lenbach)
I. Allegro molto ed appasionato (C minor)
II. Allegretto espressivo alla Romanza - Allegro molto - Tempo I (E major)
III. Allegro animato - Con fuoco - Cantabile - Tempo I - Con fuoco - Prestissimo (Doppio movimento) (C minor - C major)

Josef Suk(1874-1935):  4 Pieces for Violin and Piano, Op. 17 (18 mins. / 1900 / dedicated to Karel Hoffmann)
I. Quasi ballata. Andante sostenuto
II. Appassionato. Vivace
III. Un poco triste. Andante espressivo
IV. Burleska. Allegro vivace

"난 아직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4막 1장 - 디미트리어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0번 C장조, K. 303 (293c)

1778년 만하임에서 작곡됐고 같은 해에 작품 번호 1번에 묶여 출판됐다. 신성로마제국의 팔라틴 선제후 부인인 마리아 엘리자베스에게 헌정되었다.
역사가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다르지만 신성 로마 제국 Sacrum Imperium Romanum은 962년부터 1806년까지 존재했던 제국이다. 가장 넓었을 때는 좌우로 현재의 프랑스 동부에서 폴란드 서부까지, 남북으로는 현재의 덴마크 바로 밑에서 중부 이탈리아와 코르시카, 사르데냐까지의 넓은 지역을 영토로 삼았다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을 즈음에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정도로 영역이 줄었다. 명목상이긴 하나 로마 제정 시대의 원로원 체제를 모범으로 삼아 선거인단이 황제를 선출하는 제도를 가졌다. 투표권을 가진 귀족을 가리켜 선제후 選帝侯 Princeps Elector라고 했는데 위계상 제국의 봉건 제후들 가운데 왕 또는 황제 다음으로 높았다. 팔라틴 선제후의 팔라틴은 봉건 작위를 일컫는 말이다. 백작 작위를 갖고 지방으로 내려가 사법관 겸 행정관으로 일한 이들을 가리킨다. 국왕 또는 황제의 대리자로서 일반 백작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다. 오늘로 치자면 팔라틴 선제후는 도지사 겸 대법관 겸 국회상임위원장 쯤 될 것이다. 모차르트의 곡을 헌정받은 마리아 엘리자베스의 남편의 이름은 카를 4세 테오도르이다. 바바리아 선제후였던 그를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정치보다 철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즉흥적인 딜레탕트였다고 묘사한다. 부인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오늘까지 이어져 사랑받는 명작에는 이처럼 우연적이면서 다양한 영양분이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1악장 아다지오의 시작 부분은 사뭇 몽환적이다. 느리고 여린 음이 이어지다가 알레그로로 빨라지는데 이런 전개는 한 번 더 반복된다. 오늘의 관점에서 봐도 매우 독창적인 짜임새다. '미뉴에트의 빠르기'로 지정된 2악장은 미뉴에트의 춤곡 요소가 혼합된 소나타 양식이다. 두 개의 주제가 재현부에서는 반대의 순서로 나타난다. 느렸다 빨라졌다 하는 템포의 변화가 사뭇 매력적이다.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Op. 45

그리그를 가리켜 북유럽의 쇼팽이라고 한다. 독일 낭만파 음악의 기초 위에 노르웨이 민족 음악의 선율과 리듬을 도입함으로써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만들었다.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은 작곡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후에 발표한 작품이다. 첫 두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2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 이 3번은 거의 20년의 세월이 흐르고서야 나왔다.
어두운 색조의 3번 소나타는 서정미 넘치는 이전 두 개의 소나타와 궤를 달리 한다. 1악장에서 간헐적으로, 2악장에서는 철저하고도 명시적으로 나타나는 민족주의는 작곡가가 비요른손에게 쓴 편지의 표현처럼 (북구의) '넓은 지평선'을 펼쳐 보인다. 서로 극명하게 대조되는 1악장의 첫 두 주제는 소위 '그리그 동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첫 주제의 첫 동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면서 발전부를 구성한다. 태풍의 눈처럼 음악이 잠시 멈추는 듯 하다가 다른 화성을 사용해 그리그 동기를 확장시킨다. 코다는 발전부 초입에 쓰였던 분산화음을 등장시켜 서정적으로 마무리되는 듯 하지만 곧 분위기는 어두워져 깊은 암흑 속에서 끝난다. 1악장 말미의 음울한 불협화음은 E 장조의 느린 2악장 도입부의 빛나는 선율과 효과적으로 대비된다. 이 선율은 그리그가 그려낸 가장 행복한 영감의 소산이 아닐까 한다. 단조로 쓰인 중간부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다시금 도입부의 선율로 돌아가면서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주제는 공고하게 이어진다. 마지막 악장은 1악장과 같은 방식, 즉 대조되는 두 부분을 제시하고 반복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두 악기는 격렬하게 서로의 주장을 펼친다. 피아노의 분산화음 위로 바이올린이 행진한다. 두 번째 주제에 자리를 내주도록 속도가 느려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갈망의 몸짓처럼 바이올린은 낮은 음에서 시작해 점차 상승하다가는 다시 뒤로 물러선다. 프레스티시모의 종지부는 단조로 제시됐던 첫 주제를 긍정의 C장조로 바꿔 연주하며 숨막힐 듯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친다.
1887년 12월 10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초연에서 그리그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다. 바이올린은 맡았던 이는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수였던 아돌프 브로드스키였다. 그는 연주 불가 판정을 받아 3년 넘게 초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초연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3번 소나타의 초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바이올린 연주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수크: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소품

수크는 이 곡을 1900년 봄에 작곡해 동료 바이올리니스트인 카렐 호프만에게 헌정했다. 연주 시간 18분 정도의 작은 모음곡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수크의 역량과 기량이 얼마나 폭넓고 고도로 발전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으로 들려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스타일과 고난도 기교가 들어있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꼭 한 번 등정해야 할 산과 같은 곡이다.
1곡 - 발라드 풍으로
첫 소품의 도입부가 그려내는 구절 속의 여러 질감과 음색은 다양한 색채와 점묘법이 구사된 인상주의 그림의 느낌이다. 중간부는 느닷없을 정도로 매우 낭만적인 분위기로 바뀌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앙상블이 얼마나 밀접한가 시험하게 한다. 클라이맥스로 다가가며 두 악기의 선율은 날카롭게 교차한다. 수크는 여기서 바이올린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음역을 연주하도록 한다. 듣는 이에겐 흥미진진한 일이나 연주 당사자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2곡 - 열정적으로
활기찬 두 번째 소품은 수크에게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한다. 화려한 리듬, 인상적인 선율로 시작한 악장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대목으로 표정을 바꾼다. 바이올린의 풍성한 음색과 힘 있게 또 가볍게 긋는 보잉의 활용이 이 대목에 등장한다. 도입부가 재현되면서 끝난다.
3곡 - 약간 슬프게
바이올린의 중역대를 사용해 도입부의 느낌은 자못 진중하다. 두 악기의 긴밀한 호흡이 이 악장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지점이다. 수크의 서정성은 이 악장에서 두드러지며 스승인 드보르작의 영향도 드러난다. 이어서 음악은 가벼운 폴카로 넘어가는데 진지했던 도입부의 음향과 폴카의 빠른 리듬이 절묘하게 융합된다.
4곡 - 부를레스카
무궁동의 얼개로 펼쳐지는 마지막 악장은 악마적인 빠르기와 고난도 기교로 점철된다. 연주자에게 엄청난 기량을 요구하는 것이 명백한 도입부에 이어 강속구 투수가 예상을 깨고 갑자기 뚝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지는 것처럼 고전적 양식의 음악이 나타난다. 행진곡 풍인 이 대목에 바이올린 피치카토와 트레몰란디가 맛을 더한다. 폭발적인 도입부가 재현되면서 곡은 짜릿하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