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가르치고 배우며 연결되다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은 가르침과 배움으로 연결된다. 평생 독일을 떠난 적 없는 바흐다. 그가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저 멀리 멕시코의 민속 춤을 접한 것은 바로크 작곡가들이 모음곡 형식으로 묶어낸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흥겹게 춤 추는 무희를 위해 연주되던 음악은 기악을 위한 모음곡으로 정리되었고 바흐는 정제에 정제를 거쳐 티 없이 하얀 결정을 뽑아냈다.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는 영혼의 춤곡이다. 듣고 있노라면 하늘 저편으로 도약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바흐의 악보는 교육용으로 널리 퍼졌다. 베토벤이 바흐를 배우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빈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을 취하지만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당대의 어법에 안주하지 않았다. 스승인 살리에리에게 헌정되었지만 그가 취했던 길은 기존 체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흐의 길에 가까웠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는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취지가 분명하다. 단순하다. 그렇다고 쉽다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것으로 설득력 있는 흐름을 갖추려면 전체를 장악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세부적인 것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2악장의 변주, 3악장의 마주르카에서 비틀린 유머감각을 발견한다. 베토벤 1번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조소라고도 한다. 정형 속에 숨겨진 개성이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안전하겠다. 이 점에서 프로코피예프는 베토벤을 계승한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D 단조, BWV 1004
I. Allemanda 알르망드
II. Corrente 쿠랑트
III. Sarabanda 사라방드
IV. Giga 지그
V. Ciaccona 샤콘느
흔히 하는 말로,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이고 신약성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라고 한다. 바흐와 베토벤은 바이올린 음악에서도 비슷한 비중의 작품을 남겼다. 구약성서를 이루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리고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 샤콘느는 가장 높은 보좌에서 가장 귀한 왕관을 씌울만한 작품이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아침마다 듣거나 연주하고, 모든 음악의 으뜸이자 더 이상 아름다운 음악은 있을 수 없다고 추앙하는 곡이다.
바흐가 누구를 위해, 어떤 이유로 작곡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너무 어려워서 무대 위에 올려지지도 않았다 한다. 요제프 요아힘의 연주와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브람스가 격찬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음악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바흐의 아들들이 필사한 악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썼다고 하며 다른 선생들도 교재로 채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바흐의 음악은 교사와 학생, 학자들로 이어져 베토벤에게도 가 닿았다는 설명이다. 1814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한 버터 가게에서 포장지로 쓰던 낡은 종이 뭉치 틈에서 이 곡의 자필악보가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과장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바흐의 첫 전기를 쓴 포르켈은 이 곡의 생명력을 아주 멋지게 묘사했다. “바흐의 선율은 결코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 그의 선율은 그것을 만들어 낸 자연 자체처럼 영원히 아름답고 영원히 젊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형식을 떠나 예술의 내적 원천에서 솟아난 선율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은 더욱 새롭고 신선하며, 마치 어제 갓 태어난 것 같다.” (포르켈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 강해근 번역, 한양대 출판부, p.89)
파르티타 2번은 모두 춤곡 양식으로 쓴 모음곡이다. 1악장은 프랑스에서 유행한 독일풍의 명랑한 민속 춤곡인 알르망드이다. 알르망드는 프랑스어로 '독일풍'이란 뜻이다. 16분 음표로 진행하며 전체적으로 각 성부를 반복하는 2부 형식이다. 2악장 쿠랑트는 프랑스어의 'courir(달리다)'에서 온 말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빠른 춤곡의 하나다. 17세기 중엽 이후로 고전 모음곡에서 알르망드 뒤에 놓였다. 셋잇단음과 점리듬을 대비하며 진행되고 2부 형식으로 구성된다. 3악장은 사라방드다. 페르시아가 기원으로 사전적인 의미는 "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곡"이다. 3/4박자이고 2박에 강세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느린 부분에서는 여덟 마디 단위로 진행한다. 4악장은 15세기 영국의 지그 Jig라 불리던 전원풍의 춤곡에서 유래된 악장이다. 류트를 위한 모음곡들에 등장함으로써 고전 모음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양식으로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12/8박자로 제1부와 제2부의 처음은 8분 음표를 중심으로 진행하지만 이외의 부분에서는 16분 음표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대개의 고전모음곡은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로 끝나지만 파르티타 2번에는 샤콘느가 추가되었다. 비중으로는 앞선 네 개 악장을 합한 것보다 크다. 샤콘느 또한 바로크 시대의 춤곡 형식으로 4소절에서 8소절의 화성 모형을 반복하는 형태를 지녔다. 원래 17세기 멕시코 지역의 춤곡이었는데 식민 지배자인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다. 느린 3박자의 장중한 춤곡이다. 이 악장은 3/4박자이며 256마디의 큰 규모이다. 하나의 선율이 화성적, 대위법적 기법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한다. 세고비아에 의한 기타 편곡, 부조니에 의한 피아노 편곡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바이올린 소나타 1번 D 장조, Op.12-1
I. Allegro con brio 빠르고 씩씩하게
II. Tema con variazioni: Andante con moto 주제와 변주: 조금 빠르게 그리고 활기있게
III. Rondo 론도
1-1의 베토벤 소나타 2번과 같은 시기에 작곡됐고 스승인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헌정되었다. 작곡 능력을 인정받아 경력 발전에 도움을 기대했을 거라는 평가가 있다. 빈 고전주의의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곡은 활기차며 당대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조성과 음조를 채용했다. 건반이 아닌 바이올린이 먼저 주제를 제시한다. 빼어난 피아노 연주자였으며 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자로도 활동했던 그 답게 고도의 연주기법이 1악장부터 드러난다.
1악장은 바이올린의 더블 스톱으로 주요 화음을 나타내고 피아노는 아르페지오로 급속한 진행을 보여준다. 당시로서는 전위적인 기법이었다. 2악장은 주제와 네 개의 변주로 이루어졌다. 활기차지만 악상은 차분하다. 대립각을 이루는 특색있는 변주들이 흥미를 끈다. 마지막 악장은 베토벤 특유의 유머 감각이 즐겁다. 장난기가 얹힌 활발한 론도이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D 장조, Op.115
I. Moderato 적당한 빠르기로
II. Andante dolce. Tema con variazioni 천천히 부드럽게, 주제와 변주
III. Con brio. Allegro precipitato 불처럼 강렬하고 저돌적으로 빠르게
1947년에 작곡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3악장의 소나타이다. 소비에트 연방 예술위원회가 재능있는 바이올린 학생을 위한 교육용 작품을 위촉함에 따라 만들어졌다. 따라서 기교적인 작품은 아니며 애초에는 한 명의 솔로이스트가 아닌 복수의 학생들이 유니즌으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무대 위에 올려진 것은 프로코피예프 사후 6년이 지난 1959년 7월의 일이다. 루지에로 리치가 모스크바 컨서버토리에서 연주했다.
고전 양식으로 쓰여졌으며 선율의 대부분은 온음계이다. 첫 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2악장은 주제와 다섯 개의 변주로 구성되었으며 마지막 악장에서는 마주르카 춤곡 특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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