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연민 또는 흔들리며 피는 꽃

 


1-5 연민 또는 흔들리며 피는 꽃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슈베르트가 남긴 곡은 여섯이지만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검색하면 여섯에서 모자라거나 검색 결과가 없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출판 당시 이 곡들에 '소나타'가 아닌 다른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연주곡인 3개의 소나타를 작곡가는 자필 악보에 '소나타'라 적었다. 그러나 사후에 출판될 때는 규모가 작은 소나타란 의미의 '소나티나'로 그 표제가 달렸다. 같은 시기에 작곡된 D.574의 소나타는 '듀오'로 출판됐고 이후에 작곡된 두 곡은 각각 '론도'와 '환상곡'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슈베르트를 좋아하면서도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반열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생전이나 사후 백 년 넘도록 소수의 애호가 외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곡가들과는 왠지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사에서 그는 후원자와 스승 없이 자기 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자신의 작품으로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은 생전에 단 한 차례 있었을 뿐이다. 서른 한 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인 프란츠 그릴파처는 이런 묘비명을 썼다. "음악은 여기에 풍성한 보물과 그보다 훨씬 귀한 희망마저 묻었노라" 슬픔과 아쉬움이 가득한 표현이다. 동시에 오해의 소지도 있다. 젊은 나이에 죽었으므로 완숙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며 따라서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란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의 작품이 바흐, 베토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평가를 주저했다. 이런 일은 오늘까지도 일부 이어진다. 작곡가로서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그늘 아래에서 살았다.(실제 그는 베토벤의 장례식 행렬에서 횃불을 들었다.)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했던 베토벤을 죽기 일주일 전에야 겨우 만났던 그는 평소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베토벤 이후에 누가 감히 음악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슈베르트 자신이 냈다. 그가 베토벤 사후에 남겼던 위대한 작품들로 말이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그는 가사를 다듬으며, 또 일기와 편지를 쓰며 많은 기록을 남겼다. 이 곡들을 쓰고 5년이 지난 7월에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꿈에서 본 글을 적는다.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슬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묘사일 수 있고 예술 앞에 선 그의 태도와 감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소나티나로 널리 알려진 첫 3개의 소나타는 1816년 3월과 4월에 쓰여졌다. 슈베르트의 나이 열아홉 때이다. 작곡가의 길을 반대한 아버지와 가난 때문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이, 가까운 친구에게 들려줄 목적으로 작곡을 이어갔던 이, 지척의 베토벤을 존경하면서도 수줍은 성격 탓에 찾아가지 못했던 이, 사랑은 힘들기만 했던 이가 슈베르트다.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열아홉 슈베르트는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이었다. 한 해 전, 충격적인 가곡 '마왕'을 썼고 그때까지 12개 넘는 현악사중주 곡을 썼음에도 초기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풋풋함이 엿보인다. 아직 세상과 맞서기에는 어린 나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두렵기만 한 나이. 그 세월을 한참 지난 나이가 된 이들이 옛 시절을 되돌아보면 언뜻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곡은 우리들 어린 시절의 비망록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슈베르트의 청춘에, 또 우리들의 청춘에 연결된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바이올린 소나타 1번 D 장조, D.384
I. Allegro molto 빠르고 생기있게
II. Andante 느리게
III. Allegro vivace 아주 빠르고 활기차게

슈베르트는 능숙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이 곡을 쓸 때까지 12개가 넘는 현악사중주를 작곡했을 정도로 바이올린과 현악기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쓰인 세 개의 다른 바이올린 소나타들과 함께 이 곡은 연주자의 높은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라기 보다는 친밀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악보에 "1816년 3월"이라 적었다. 초연에 대한 기록은 없다. 넘치는 악상이 자유로운 화성으로 펼쳐진다. 아마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모임에서 연주했을 것이다.

프란츠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 단조, D.385
I.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
II. Andante 느리게
III. Menuetto: Allegro 미뉴에트: 빠르게
IV. Allegro 빠르게

연민을 표현할 때 슈베르트가 즐겨 썼던 것은 A 단조이다. 이 곡은 D 장조의 1번 소나타보다 작곡가의 개성과 풍미를 더 갖고 있다. 1악장 시작에서 피아노의 갈망하는 듯한 노래를 바이올린이 격한 미사여구로 되받는다. 이어 서정적인 C 장조의 주제는 선율과 화음 모두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로지나 백작부인의 아리아 '아름다운 그 시절은 어디에'를 연상하게 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왼손을 중심으로 하는 대화가 F장조의 세 번째 주제이다. 슈베르트는 소나타 형식의 많은 악장에서 두 개의 조성을 썼지만 여기서는 세 개의 조성을 펼친다. 매혹적인 F 장조의 안단테 악장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F 장조의 미뉴에트 피날레를 떠오르게 한다. D 단조의 3악장은 전통과 다른 행보이다. 우울하면서도 우아한 마지막 악장은 1번 소나타의 마지막과 유사하지만 더 넓은 구조와 더 대담한 전개가 펼쳐진다. 절정의 순간에 포효하는 두 악기는 베토벤의 격정을 닮았다.

프란츠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G 단조, D.408
I. Allegro giusto 정확한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II. Andante 느리게
III. Menuetto: Allegro vivace 미뉴에트: 아주 빠르고 활기차게
IV.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

1816년 4월에 쓴 이 곡에 슈베르트는 '소나타 III'라 적었다. G 단조 소나타는 A 단조 소나타와 많은 특징을 공유한다. 두 개의 주제가 아닌 세 개의 주제를 등장시키는 첫 악장, 모차르트에 대한 헌정과도 같은 안단테 악장, 빠른 미뉴에트와 한결 느슨한 랜틀러가 교차하는 3악장, 장대한 마지막 악장의 구조가 그러하다. 4악장은 회한 어린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오페라 코미크와 같은 대중적 선율로 바뀌면서 빠르게 밝아진다. '소나티나' 3부작은 "그래도 희망하자"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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