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쉘 위 댄스 - 바흐에서 스트라빈스키로


 1-6 쉘 위 댄스 - 바흐에서 스트라빈스키로

음악과 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둘의 상관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이란 틀로 보면 인간의 예술 활동 중 시와 음악은 시간 속에, 회화, 조각, 건축과 같은 미술 활동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춤의 경우는 좀 다르다.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존재한다. 춤에 대한 설명이 많다. <시경 詩經>은 마음에 피어오르는 생각을 말이나 노래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부지불식간에 수족이 움직이는 것을 춤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춤출 줄 모르는 것이 교육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여 춤과 음악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이성을 형성하고 완성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종교의식, 무속행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을 춤과 음악의 기원으로 보는 연구가 많다. 인생의 여러 단계를 축하하고 기릴 때, 또는 수렵, 파종, 기우, 전쟁과 관련한 행사의 일부로서 음악과 춤을 보기도 한다.
음악에 대한 설명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악기 樂記>에서는 인간 내면의 덕행을 행하게 하는 것이 음악이라 했고 음악이 백성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만든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사람 마음대로 만들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며 음악만이 영혼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동양에서는 음악이 개인의 의지에 영향을 주어 성격과 행동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에 방점을 두었고 서양에서는 수와 비례로서의 과학적 측면을 강조하여 음계와 음정의 확립에 기여했다. 소리를 한자로는 이렇게 구분한다. 성聲은 단순한 소리, 음音은 곡조를 이루는 것, 악樂은 연주를 하고 무용까지 더한 포괄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서구 문명의 근간인 고대 그리스어로 춤과 음악을 살펴보자. 안무, 무용술을 영어로 choreography라 하는데 이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코레우에인 choreuein은 집단 춤을 뜻하는 오르케시스 orchesis에서 유래했다. 오르케시스의 용례는 합창 chorus과 오케스트라 orchestra로 확장된다. 음악 music의 어원인 무지카 musica는 애초 음악, 무용, 무대 공연까지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이쯤 되면 음악과 춤, 춤과 음악을 분리하는 것이 되려 더 어렵다. 애초 하나였던 것이 두 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라고 봄이 타당하겠다. 서양음악의 발전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은 음악이 춤을 위해 봉사하는 단계에서 특정 춤의 양식을 정제해 양식화된 기악 음악으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춤-음악의 기능성이 약화되고 대신 음악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과정이다. 춤에서 비롯된 음악이 순수 감상의 목적으로 연주될 때 춤은 직접적인 몸놀림을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형태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악보에 적힌 음악이 연주자에 의해 해석될 때, 곡 제목으로서의 춤은 더 이상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대상이 된다.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부레, 미뉴에트, 왈츠, 타란텔라, 그 외 수많은 춤곡들은 양식과 형식으로, 양식의 파격으로,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자의 해석으로, 나아가 연주자의 해석과 청자의 교감이라는 다채로운 층위로 다가온다. 이런 면에서 바로크 이후 근대의 춤곡을 듣는 것은 고고학적 행위이자 두툼한 크레페를 잘라 촘촘한 단면을 보고 즐겁게 맛보는 호사이기도 하다.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은 네 개의 악장이 모두 춤곡 양식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립된 바로크 모음곡의 형식에서 지그를 부레로 바꾸는 파격, 악장마다 변주곡을 붙이는 변화가 독특하다. 바흐의 악보는 열려있다. 모든 세부사항을 엄격하게 따르라 지시하는 시방서라기 보다 시공사의 재량을 인정하는 설계도에 가깝다. 감정의 고조에 따라 확장될 수 있는 춤의 속성에 닿아있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모든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활발한 느낌으로는 으뜸인 22번 A장조의 1악장이 뒤를 잇는다. 이 곡의 2악장에는 절제된 감정의 변주곡이 등장한다. 현란한 몸놀림 대신 섬세한 손가락, 나풀거리는 옷자락이 인상적인 춤사위라 하겠다. 나직한 목소리가 우렁찬 웅변보다 더 설득력을 발휘할 때가 있는 법이다. 스트라빈스키를 <봄의 제전>, <불새>의 작곡가로 알던 이에게 '이탈리아 모음곡'은 꽤나 생경하다. <봄의 제전>보다 더 원시적이고 과격해서가 아니라 이 곡이 지닌 신고전주의적 단아함 때문이다. 이 곡이 잊혀졌던 페르골레지의 몇몇 악보를 토대로 만든 1막 짜리 발레 '풀치넬라'의 음악을 원전으로 하고 있음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로크 모음곡의 느낌을 주는 발레 모음곡, 20세기 감각으로 다듬은 18세기 음악. 그게 '이탈리아 모음곡'이다.
자 춤이 준비된 듯하니 그렇다면, 쉘 위 댄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1번 B 단조, BWV 1002
I. Allemanda - Double 알르망드 - 변주곡
II. Corrente - Double (Presto) 쿠랑트 - 변주곡
III. Sarabande - Double 사라방드 - 변주곡
IV. Tempo di Borea - Double 부레 - 변주곡

1720년에 작곡됐다. 바로크 모음곡의 양식을 따라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까지 이어지고 지그 대신에 부레가 등장한다. 각 악장의 끝에는 앞선 악장의 주제를 정교하게 세공하는 변주곡이 붙는다. 프랑스어의 두블레 Double는 변주곡을 의미한다. 레코딩에 따라서는 변주곡을 별도의 악장으로 보아 8악장 구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라틴어 격언에 'varietas delectat'란 게 있다. 뜻은 '다양함은 즐겁다' 정도다. 바흐가 파르티타 1번을 썼을 때 마음에 품었던 격언이 아닐까 싶다. 바흐 시대에는 작곡이나 연주에서 다양성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주어진 선율과 화성의 틀 안에서 어떤 장식을 더함으로써 다양성을 드러낼까 하는 것이 당대의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의 과제였다.
BWV 1004의 샤콘느에서 변주곡은 극도의 예술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변주곡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 파르티타 1번에서 먼저였다. 이 파르티타는 모든 악장에 변주곡이 붙은 유일한 파르티타이다. 이 변주곡들이 단지 주제의 변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화성의 틀 안에 있지만 쿠랑트의 변주가 아주 빠른 전개로 결론에 이르는 것처럼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런 특성을 가리켜 음악학자 요한 발터는 "시로 따지자면 보다 짧은 시어로 이루어진 별도의 연"이라고 했다. 지그로 끝나는 바로크 모음곡 형식의 일반적 모습 대신에 부레가 채용되었는데 특기할 일은 이 부레가 바흐의 전작품에서 변주곡이 붙은 유일한 부레라는 점이다. 변주곡이 시작되기 전의 악장은 다른 많은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2부로 구성된다. 두 번째 부분은 첫 번째의 반복인데 바흐 악보에 따르면 연주자의 재량에 따른 장식음 사용이 가능하다. 변주곡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파르티타 1번은 따라서, 다양성의 즐거움이 충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바흐는 네 개의 현으로 만들어진 독주 선율 악기로 다성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사실 그의 작품은 베스토프, 비버, 마테이스 등으로 이어진 기교 추구의 전통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 오히려 음악을 통한 교감, 내면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에서 다성음악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변주와 연주자의 재량이 그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결국 파르티타 1번을 감상하는 포인트는 네 개의 춤, 네 개의 변주, 그리고 여덟 번의 열린 가능성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22번 A 장조, K.305
I. Allegro di molto 아주 활발하게
II. Tema. Andante grazioso - Variations I-V - Variation VI. Allegro 주제. 느리고 우아하게 - 변주곡 1-5 - 변주곡 6. 빠르게

휘몰아치듯 시작하는 1악장은 활기차고 느긋한 두 개의 주제가 교차한다.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2악장은 '팔라틴 소나타'를 쓸 당시의 작곡가의 심경이 담긴 듯 하다. 자연스러운 멜로디 전개 속에 깊은 내면을 엿보게 하는 악상이 흐른다. 복잡한 심경을 간결한 시어로 전하는 천재 시인의 모습이다. 마지막 변주곡에 이르러 소나타 첫머리의 생동감이 소환되고 끝난다.
"모차르트 음악은 잘 쓰인 시와 같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간결하게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모차르트 음악은 정적에서 시작돼 고요함 속에 사라져 간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연주하려면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겸비해야 한다."
안네-소피 무터의 말이다. 음악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된다. 이 소나타는 씁쓸짭짤한 속마음을 밝은 표정 밑에 감춘 모차르트를 어른거리게 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아 모음곡' (발레 음악 <풀치넬라>에서)
I. Introduzione 서곡
II. Serenata 세레나데
III. Tarantella 타란텔라
IV. Gavotta con due Varizioni 가보트와 두 개의 변주곡
V. Scherzino 작은 스케르초(농담)
VI. Minuetto - Finale 미뉴에트 - 피날레

당신은 바로크로부터 초기 낭만주의까지를 좋아하고 스트라빈스키를 <불새>와 <봄의 제전>의 작곡가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모음곡'은 어떤 불협화음으로 나를 불편케 할 것인가, 라며 내심 걱정할지 모른다. 스트라빈스키도 그랬다. 이 곡의 원전인 <풀치넬라>의 작곡을 의뢰 받았을 때 말이다. 러시아 발레단 총지배인인 디아길레프는 이탈리아 음악원과 도서관 등지에서 찾아낸 페르골레지의 악보(일부만 전하는 필사본을 포함해 그 시대 다른 이들의 악보도 섞여 있었다)와 시나리오를 들고 스트라빈스키를 찾아가 17세기 가면극 풍의 발레를  만들려 하니 이 악보를 토대로 곡을 써 달라고 했다. 스트라빈스키는 페르골레지를 <스타바트 마테르>로, 즉 비극적 장엄함의 작곡가로 이해하고 있었다. 혈기 왕성한(<봄의 제전>에 비추어보자면) 당대의 스타 작곡가가 이 제안을 탐탁지 않게 여겼음은 당연하다. 생각은 <스타바트 마테르>와 사뭇 다른 악보를 뒤적이면서, 또 피카소가 미술 담당으로 참여한단 얘기를 들으면서 바뀌었다. 

1900년대 초,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최고봉은 오페라와 발레였고 파리는 그 중심이었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피카소가 손을 맞잡은 것은 오늘날로 치자면 헐리우드 초대형 블록버스터 기획에 스필버그, 봉준호, 존 윌리엄스가 힘을 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페르골레지의 악보에 현대적인 장치, 예를 들어 목관과 금관을 대조시키고 불협화음을 슬쩍 섞고 타악기의 음향 효과를 가미하는 식으로 새로운 탄생을 도모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고 전한다. 음악도 마찬가지. 그래서 음악회를 위한 용도로 여러 번 편곡되었다. 먼저는 관현악 모음곡으로, 이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말이다. 바로크 모음곡처럼 우아한 가운데 타임머신 기능이 있는 베틀의 북이 17세기와 20세기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직조하는 느낌을 전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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