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대조 II: 단순계의 경우


 1-8 대조 II: 단순계의 경우 

바흐로 시작해 슈베르트를 거쳐 슈만으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조성은 C단조 - B단조 - A단조이다. 오늘의 레퍼토리가 왜 단순계냐 하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란 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어떻게 이 곡들을 단순하다고 얘기할 수 있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의 곡들에 비하자면 이 곡들엔 비교적 짧은 라벨을 붙일 수 있다. 슬픔, 화려, 신비 - 이런 식으로 말이다.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놀랍도록 잘 연기하는 이를 명배우라 한다. 종종 주연보다 더 깊이 뇌리에 박히는 조연들이 있는데 대개는 성격 배우이다. 지난 시간엔 명배우여야 했고 오늘은 성격 배우여야 한다. 아주 슬프고, 아주 화려하고, 아주 신비로운 맛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다짜고짜 들이대면 설득력이 반감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시작해 가깝게 접근해야 한다. 바흐가 그렇다. 작곡가가 요구하는 기교 수준을 넉넉하게 수용할 능력도 갖춰야 한다. 중요한 건 기교의 자랑이 아니라 작품의 구성요소로서의 기교에 대한 자연스러운 납득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가 그렇다. 이 두 작품은 곡의 내용이 조성의 색깔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슈만은 독특하다.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는데 이 느낌은 다층적인 구조가 아닌 빠른 변화에 기인한다. 환각이나 신비감을 느낄 정도다. 이 곡이 단순계에 들어온 것은 마음이 아팠던 슈만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자는 아티스트의 요청 때문이다. 곡과 곡 사이의 대조, 곡 안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의 대조를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다. 대조의 파도는 점점 거칠어질 것이다. 각 작품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역할 분담과 협력 관계를 대조해보는 맛도 쏠쏠하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4번 C 단조, BWV 1017
I. Largo 아주 느리게, 폭 넓고 풍부한 표정으로
II. Allegro 빠르게
III. Adagio 천천히
IV. Allegro 빠르게
1720년 경의 작품이다. 레오폴드 제후를 따라 쾨텐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바흐의 비통함이 새겨져 있다.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교회 소나타 악장 배치다. 느린 1악장과 3악장은 깊은 슬픔을, 빠른 2악장과 4악장은 슬픔 속의 종교적 체념을 전한다. 슬프지만 거룩하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론도 브릴란트(화려한 론도) B 단조, D.895
Andante - Allegro - Andante - Allegro - Piu mosso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 빠르게 -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 빠르게 - 좀 더 빠르게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를 피아노가 뒷받침하는 형태의 곡이다. 그래서 협주곡의 성격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바이올린 연주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던 슈베르트가 높은 수준으로 고도화된 당시의 기교를 망라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불꽃 터지는 화려함이 가득하다. 제목 참 잘 지었다.
로베르트 슈만(1810-1856):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 단조, Op.105
I. Mit leidenschaftlichem Ausdruck 열정적인 표정으로
II. Allgretto 조금 빠르게
III. Lebhaft 생생하게
만년의 슈만은 정신이상 증세를 겪었다. 그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다. 1악장은 꽤나 혼란스럽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하는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2악장은 웬걸, 제정신이 돌아왔네, 하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뛰어다니는 3악장이 이어진다.
환각, 단절, 절망, 신비 체험, 대인기피, 갑작스런 행복감 ...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런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작곡가의 삶을 읽고 이 곡을 대하면 비슷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독한 연애를 해 본 배우가 실감나는 사랑 연기를 하고 격한 슬픔을 겪어본 이의 눈물 연기가 훨씬 짭짤한 법이다. 슈만 소나타는 절망과 극복의 경험을 요구하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리다 하여 그런 경험이 없을까마는 젊어서의 굴곡은 충분히 눅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슈만 소나타는 맹숭맹숭한 감이 없지 않다. 1악장에 붙은 악상 설명인 '열정적인 표정'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같은 단어라 해도 경험치에 따라 함의가 달라지곤 한다. 지독한 아픔 몇 개를 나이테로 새긴 이들은 잡아챌 때 잡아채고 지긋이 눈 감아야 할 때 그럴 줄 아는 여유로 프레이징을 잇는다. 음표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간을 들려줄 때 이 곡의 맛이 산다. 이 곡이 왜 '단순계'에 포함되었을까. 대조되는 세 악장을 하나로 뭉치면 극도의 신비(또는 혼란)감을 자아내서? 영 틀렸다고는 못하나 견강부회의 감이 없지 않다. 아티스트의 프로그래밍 취지는 이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흔 살 슈만을 소환해 그의 혼란한 마음을 하나하나 분석적으로 재현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슈만을 곡해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곡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열정과 생생함을 슈만의 악보 위에 그려낼 수 있다. 아픈 슈만이 펜을 쉬지 않았던 것은 이런 대화를 원해서였을 거다. 나는 이래, 당신은 어때? 하면서. 낭만주의자 슈만은 그렇게 단순하고 담백한 태도라야 충분히 낭만스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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