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1-10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시즌 1의 마지막 무대다. 당연한 얘기는 피해야 마땅하나 마지막이니 만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무대는 청중이 있어야 빛이 난다. 환호건 야유건 사람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청중 없는 무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늘날엔 더더욱 그런 것이 으레 주인공이라 여겨지는 음악 작품과 연주자보다 청중, 그리고 그들의 반응이야말로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소주제로 묶여 무대에 올려진 곡들은 거의 예외 없이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 시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즉각적인 환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작품들은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는 걸작의 보좌 앞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 견딤으로써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말미암아 스러지지 않는 생명을 획득했다. 이제 도전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들의 새로운 해석은 청중에게 도전이 된다. 하나의 악보가 각기 다른 결과를 내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한 일이다. 어떤 책이 경전이 되느냐 여부는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담보했는가에 달렸다. 귀 밝은 사람들은 싫증을 잘 낸다. 빼어난 기교를 들려주더라도 이전의 다른 누구를 연상케 하는 연주, 하나의 레퍼토리를 언제나 똑같은 패턴으로 읽는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르면서도 설득력 있는 연주에 감동한다.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는 것은 기억 속 다섯 장의 음반과 다섯 번의 연주회란 돋보기를 들고 오늘은 어떤 새로운 얘기를 들을지 기대하며 무대를 바라보는 일이다. 합의가 필요하진 않다. 내 머릿속 이상적 연주와 결이 다르더라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으면 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면 자기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니 그건 틀렸다고 해도 틀린 주장이 아니다.
시작은 여느 때처럼 바흐다. 바로크로부터 고전을 향해 나아가는 가교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가슴 찢어지는 1악장부터 애써 옷매무새 다듬고 조사를 읽는 듯한 4악장까지 모두 단조다. 드뷔시의 소나타도 단조이긴 하나 슬픔이 아닌 열정과 향수가 매력적이다. 바흐를 깊이 존경해 6개의 무반주 솔로 소나타를 쓴 이자이는 그 네 번째를 크라이슬러에게 헌정했다. 기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곡이다. 속주 바이올린의 거장 크라이슬러를 염두에 두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쇼송은 동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에게 '시' 한 편을 지어주었다. 출중한 기량이 필요한 난곡이다.
시민혁명으로 왕정이 뒤집어지고 산업혁명으로 부르주아가 귀족을 대체하고 과학혁명으로 상식이 엎어지던 시대였다. 아울러 큰 전쟁의 소문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균형잡힌 틀에 담아내기에 세상은 너무 크고 비틀리고 찌그러져 가고 있었다. 어떤 작곡가는 세기말의 낭만에 휩싸여 큼직한 함지박에 세상을 담으려 했고 다른 어떤 작곡가는 남이야 어쩌던 간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겠노라 선언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가. 누가 감히 후자를 데카당트하다고 폄하할 것인가. 변화는 더없이 빨라졌다. 변함없는 고전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이나 체제에 도전하는 예술 행위에서 위안을 찾는 이가 공존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아티스트가 들려주고 싶은 것은 다른 걸 틀리다고 손가락질 말고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얘기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5번 F 단조, BWV 1018
I. Largo 느리게
II. Allegro 빠르게
III. Adagio 천천히
IV. Vivace 아주 빠르게
건반이 바이올린을 보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두 개의 성부를 담당하는 트리오 소나타의 원형을 보여준다. 근대적인 듀오 소나타의 시발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내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이 담겼음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전해진다. 리듬의 변화 속에서도 애통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애통의 표현은 여러가지다. 간절한 기도, 애타는 슬픔, 영혼 구원의 소망, 남겨진 자의 외로움을 듣는 것 같다.
클로드 드뷔시(1862-1918): 바이올린 소나타 G 단조, L 140
I. Allegro vivo 빠르고 힘차게
II. Intermède: Fantasque et léger 간주곡: 환상적이며 가볍게
III. Finale: Très animé 피날레: 매우 활기차게
형식은 고전주의 소나타이지만 다양한 음계, 화음과 리듬을 사용함으로써 색채감을 강조하는 인상주의 경향이 분명하다. 드뷔시의 마지막 작품으로 초연에서 직접 피아노를 맡았다. 스페인풍의 주제가 채용되어 정열적 느낌을 전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대화를 나누기 보다 서로의 주장을 목청껏 외칠 때가 많다. 와중에 유머 넘치는 반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암으로 고생하던 말년의 작품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충만하다.
외젠 이자이(1858-1931):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4번 E 단조, Op.27-4
I. Allemande (Lento maestoso) 알르망드 (느리고 장엄하게)
II. Sarabande (Quasi lento) 사라방드 (느린 느낌으로)
III. Finale (Presto ma non troppo) 피날레 (아주 빠르게 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묵직한 힘으로 시작하는 알르망드 1악장, 피치카토와 현란한 아르페지오의 사라방드 2악장은 바흐의 향기가 진하다. 풍성한 더블 스톱 때문에 단선율 악기임에도 충만한 화성을 경험하게 한다. 2악장에는 비엔나의 낭만이 깃들어있다. 크라이슬러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 전통에 대한 헌정이다. 난무하는(?) 더블 스톱에다 현기증 나도록 몰아붙이는 속주의 3악장은 경이롭다. 동시에 바흐의 빠른 악장들이 바로 연상된다.
에르네스트 쇼송(1855-1899):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시, Op.25
Lento e misterioso - Cadenza - Animato - Poco lento - Allegro - Tranquillo
느리고 신비롭게 - 카덴차 - 점점 활발하게 - 매우 느리게 - 빠르게 - 고요하게
외젠 이자이에게 헌정되었고 그가 초연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이 중요한 곡으로 독특하고 교묘한 주법을 통해 정열과 우수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버전이 먼저 나왔으며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서정적 선율이 조성과 리듬의 현란한 변화 속에서 신비와 명상과 절정의 순간들을 그려낸다. 

1-9 대조 III: 희망계 - 그래도 희망을 품자


 1-9 대조 III: 희망계 - 그래도 희망을 품자

나이 먹을수록 세상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님을 깊이 깨닫게 된다. 어려움을 겪다가 도움을 받아 회복되면 더 그렇다. 점과 선 시즌 1의 프로그램 대부분이 두 악기에 의한 작품들이지만 오늘 '희망계'의 작품은 대화의 성격이 좀 더 강하다. 대화는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여성에게 인기 없는 남성은 대개 대화에 약점을 갖고 있다. 나름 대화를 한다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여성이 먼저 말을 꺼내면 남성은 문제를 파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이자 상대에 대한 최선이라 생각한다. 그저 잘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며 공감해 달라는 건데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현실의 연애는 어땠을지 모르나 오늘의 작곡가들은 이런 점을 잘 파악한 듯 하다. 음악적으로야 듀오가 아닌 3성부로 진행하는 트리오의 형식(바흐)을 취하고, 당대의 '표준'과 달리 느린 악장과 스케르초의 순서를 바꾸고 4악장으로 확장(슈베르트)하는 진보를 이루었음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정작 듣는 이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에게 얘기하고 공감하고 함께 길을 나아가는 다정한 모습이다. 100여 년의 시차 때문인지 이 세 커플의 대화가 어투에서는 차이가 난다. 바흐의 경우는 '~하오' 체다. "그대의 고통을 이해한다오, 아 정말 그러신가요, 마음 속 슬픔 다 내려 놓으시오, 감사해요 하지만 시간을 너무 뺏는 게..., 내  손을 잡으시오 함께 일어나십시다" 대충 이런 느낌이다. 교회 소나타의 형식을 취하되 두 악기의 균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웃픈 대화'이다. 장조로 빠르게 진행하는데 정작 대화의 내용은 기쁘기만 한 게 아니다.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힘들었던 시간을 별일 아니라는 듯 풀어놓는 친구, 이런 느낌이다. 안아주고 싶어진다. 천재 모차르트의 눈물이란 게 바로 이런 거다.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를 B플랫 장조로 가볍게 외치지만 그 뒤엔 간단치 않은 세월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대등한 대화란 측면에서 슈베르트의 '듀오'는 백미라 할 만하다. 한 쪽이 다른 쪽을 이끌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예우와 배려 속에 우아한 어조로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연대 순에 의한 프로그램이라 해도 마지막에 슈베르트가 있는 편이 희망의 노래를 마무리하는 측면에서 적절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야, 아니래도 또 다른 내일이 있으니 절망하지 말자고. 아티스트가 이 세 곡을 들려주는 것은 듣는 이들과 희망의 대화를 나누고자 함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3번 E 장조, BWV 1016
I. Adagio 느리고 침착하게
II. Allegro 빠르게
III. Adagio ma non tanto 느리고 침착하게 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IV. Allegro 빠르게
1번과 4번에 가려 주목도가 덜하지만 3번 소나타, 특히 두 아다지오 악장의 아름다움은 두 눈 감고 고개를 숙이게 할 정도로 깊이가 있다. 오죽하면 아버지를 따라 작곡가의 삶을 살던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가 "아버지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에 있는 아다지오 이상으로 훌륭한 노래가 오늘날 작곡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겠는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열정이 넘친다면 이 곡들에는 지적인 힘이 강하다. 교회소나타의 전통을 따라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네 악장 구성이고 대위법의 구사가 강하지만 독주-반주의 형식을 가미해 바로크 소나타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있다. 이 점에서 바로크와 고전의 다리 역할을 볼 수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26번 B플랫 장조, K.378
I. Allegro moderato 조금 빠르게
II. Andantino sostenuto e cantabile 의도적으로 안단테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를 충분히 유지하며 노래하듯이
III. Rondo. Allegro 론도. 빠르게
어머니를 떠나 보낸 이듬해에 작곡된 곡이다. 21번 소나타와 함께 중기 모차르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우아하고 경쾌한 흐름 속에 21번 K.304와는 결이 다른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B플랫 장조와 F장조로 시작하는 주제가 G단조, F단조로 옮겨가 코다로 나아가는 1악장이 그렇고, 노래하듯 나직하게 읊조리는 2악장이 그렇다. A-B-A-코다의 3악장에서 분위기가 바뀐다. 밝고 화려하다. 중간에 슬쩍 G단조로 진행되는 부분은 지난 시절을 반추하는 모습인데 이내 "그래서, 뭐 어쩌자고?" 되묻는 듯한 낙관적이고 적극적인 작곡가의 태도로 곡이 마무리된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바이올린 소나타 A 장조, D.574 '듀오'
I. Allegro moderato 조금 빠르게
II. Scherzo: presto 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III. Andantino 조금 느리게
IV. Allegro vivace 매우 빠르고 생기있게
가곡의 왕 답게 아름다운 선율이 매력적이다. 1악장의 도입은 스무 살도 안된 청년의 것으로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느긋함과 우아함이 서려있다. 그리고 한없이 깨끗하다. 리듬의 완급 또한 절묘하다. 세 개의 소나티나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냈다. 연속되는 스타카토로 시작하는 스케르초 악장은 유쾌하고 변화무쌍하다. 여기서도 레가토의 활용을 통해 리듬에 완급을 주어 한 가지로 규정되지 않는 그림을 그려낸다. C장조-A플랫 장조-C장조로 흐르는 3악장은 주제와 3개의 변주로 구성되었다. 역할을 주고받다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두 악기 덕에 안온한 가운데 입체적 느낌이 유지된다. 느린 흐름 속에서도 솜씨있게 변화를 가져가는 작곡 능력이 대단하다. 4악장에서는 이전에 비해 단호한 목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주제의 연관성으로 2악장과 닿아있고 조성의 변화를 활용하는 점은 직전 악장과 마찬가지다. 20분 가까운 대화에서 결론을 얻었다는 듯 둘은 곡을 즐겁게 마무리한다. 

1-8 대조 II: 단순계의 경우


 1-8 대조 II: 단순계의 경우 

바흐로 시작해 슈베르트를 거쳐 슈만으로 마무리하는 여정이다. 조성은 C단조 - B단조 - A단조이다. 오늘의 레퍼토리가 왜 단순계냐 하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란 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어떻게 이 곡들을 단순하다고 얘기할 수 있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의 곡들에 비하자면 이 곡들엔 비교적 짧은 라벨을 붙일 수 있다. 슬픔, 화려, 신비 - 이런 식으로 말이다.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놀랍도록 잘 연기하는 이를 명배우라 한다. 종종 주연보다 더 깊이 뇌리에 박히는 조연들이 있는데 대개는 성격 배우이다. 지난 시간엔 명배우여야 했고 오늘은 성격 배우여야 한다. 아주 슬프고, 아주 화려하고, 아주 신비로운 맛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다짜고짜 들이대면 설득력이 반감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시작해 가깝게 접근해야 한다. 바흐가 그렇다. 작곡가가 요구하는 기교 수준을 넉넉하게 수용할 능력도 갖춰야 한다. 중요한 건 기교의 자랑이 아니라 작품의 구성요소로서의 기교에 대한 자연스러운 납득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가 그렇다. 이 두 작품은 곡의 내용이 조성의 색깔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슈만은 독특하다. 복잡하게 여겨질 수 있는데 이 느낌은 다층적인 구조가 아닌 빠른 변화에 기인한다. 환각이나 신비감을 느낄 정도다. 이 곡이 단순계에 들어온 것은 마음이 아팠던 슈만을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자는 아티스트의 요청 때문이다. 곡과 곡 사이의 대조, 곡 안에서 악장과 악장 사이의 대조를 따라가는 즐거움이 있다. 대조의 파도는 점점 거칠어질 것이다. 각 작품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역할 분담과 협력 관계를 대조해보는 맛도 쏠쏠하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4번 C 단조, BWV 1017
I. Largo 아주 느리게, 폭 넓고 풍부한 표정으로
II. Allegro 빠르게
III. Adagio 천천히
IV. Allegro 빠르게
1720년 경의 작품이다. 레오폴드 제후를 따라 쾨텐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된 바흐의 비통함이 새겨져 있다.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전형적인 이탈리아 교회 소나타 악장 배치다. 느린 1악장과 3악장은 깊은 슬픔을, 빠른 2악장과 4악장은 슬픔 속의 종교적 체념을 전한다. 슬프지만 거룩하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론도 브릴란트(화려한 론도) B 단조, D.895
Andante - Allegro - Andante - Allegro - Piu mosso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 빠르게 -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 빠르게 - 좀 더 빠르게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를 피아노가 뒷받침하는 형태의 곡이다. 그래서 협주곡의 성격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바이올린 연주에 빼어난 재능을 보였던 슈베르트가 높은 수준으로 고도화된 당시의 기교를 망라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불꽃 터지는 화려함이 가득하다. 제목 참 잘 지었다.
로베르트 슈만(1810-1856):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 단조, Op.105
I. Mit leidenschaftlichem Ausdruck 열정적인 표정으로
II. Allgretto 조금 빠르게
III. Lebhaft 생생하게
만년의 슈만은 정신이상 증세를 겪었다. 그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다. 1악장은 꽤나 혼란스럽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하는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2악장은 웬걸, 제정신이 돌아왔네, 하는 느낌이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뛰어다니는 3악장이 이어진다.
환각, 단절, 절망, 신비 체험, 대인기피, 갑작스런 행복감 ...  조울증으로 고생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런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작곡가의 삶을 읽고 이 곡을 대하면 비슷한 단어가 튀어나온다. 독한 연애를 해 본 배우가 실감나는 사랑 연기를 하고 격한 슬픔을 겪어본 이의 눈물 연기가 훨씬 짭짤한 법이다. 슈만 소나타는 절망과 극복의 경험을 요구하는 것 같다. 나이가 어리다 하여 그런 경험이 없을까마는 젊어서의 굴곡은 충분히 눅진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슈만 소나타는 맹숭맹숭한 감이 없지 않다. 1악장에 붙은 악상 설명인 '열정적인 표정'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같은 단어라 해도 경험치에 따라 함의가 달라지곤 한다. 지독한 아픔 몇 개를 나이테로 새긴 이들은 잡아챌 때 잡아채고 지긋이 눈 감아야 할 때 그럴 줄 아는 여유로 프레이징을 잇는다. 음표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행간을 들려줄 때 이 곡의 맛이 산다. 이 곡이 왜 '단순계'에 포함되었을까. 대조되는 세 악장을 하나로 뭉치면 극도의 신비(또는 혼란)감을 자아내서? 영 틀렸다고는 못하나 견강부회의 감이 없지 않다. 아티스트의 프로그래밍 취지는 이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흔 살 슈만을 소환해 그의 혼란한 마음을 하나하나 분석적으로 재현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슈만을 곡해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곡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열정과 생생함을 슈만의 악보 위에 그려낼 수 있다. 아픈 슈만이 펜을 쉬지 않았던 것은 이런 대화를 원해서였을 거다. 나는 이래, 당신은 어때? 하면서. 낭만주의자 슈만은 그렇게 단순하고 담백한 태도라야 충분히 낭만스럽게 만날 수 있다. 

1-7 대조 I: 복잡계의 경우


 

1-7 대조 I: 복잡계의 경우

오늘부터 세 번의 공연은 대조를 주제로 한다. 대조라 쓰면서 비교를 포함한다. 호랑이와 사자는 같은 고양잇과 동물로서 육식동물이다, 라고 말한다면 비교이고, 호랑이는 단독 생활을 하고 사자는 무리 지어 생활한다, 라고 하면 대조이다. 어느 사물을 선명하게 인식하는데 대조는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의 권유는 이러하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음악이란 공통점을 가진 곡들이 서로 어떻게 다른 지 돋보기 한번 들이대 봅시다. 바흐-베토벤-브람스로 이어지는 오늘의 레퍼토리를 조성으로 따지면, B단조 - E플랫 장조 - G장조이다. 이 조성을 느낌으로 표현한다면, 조용하고 끈덕진 슬픔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느낌 - 화사하고 밝은 전원  속의 행복 - 복잡다단하여 불편한 우울함 이라 하겠다. 오늘의 레퍼토리가 '복잡계'로 묶인 것은 밝음 속의 어두움, 슬픔 속의 정화, 느림을 요구하는 빠름(또는 그 반대)처럼 한 마디로 정할 수 없는 다층적 심적 상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곳, 그 너머에 음악이 있다고 했다. 말을 폐하고 음악을 듣자. 서로 어떻게 다른지 살짝 신경 쓰면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1번 B 단조, BWV 1014
I. Adagio 천천히
II. Allegro 빠르게
III. Andante 걸음걸이 빠르기로
IV. Allegro 빠르게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을 사서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곡이다. 1악장 아다지오의 장중한 분위기 덕에 흡인력이 강하다. 바이올린이 온음표와 2분 음표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에서 하염없는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2악장은 대조적으로 경쾌하며 빠른 푸가이고 3악장은 장조를 쓰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연하며 차분한 것이 1악장과 비슷하다. 마지막 4악장은 다시 단조로 돌아와 공격적인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단조가 빠르면 얼마나 슬픈지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어둡고 비통한 가운데 희망의 끈을 내려놓지 않는 의지 - 바흐 소나타 1번은 은근히 복잡하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바이올린 소나타 3번 E플랫 장조, Op.12-3
I. Allegro con spirito 빠르고 활발하게
II. Adagio con molta espressione (C 장조) 매우 풍부한 표정을 담아 느리게
III. Rondo: Allegro molto 론도: 매우 빠르게

초기의 세 개 소나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동시에 모차르트스러움이 사라진, 베토벤의 개성이 드러나는 곡이다. 대담하고 활기찬 1악장은 주인공이 따로 없는 두 악기 간의 역동적인 대화이다. 독주악기로서의 바이올린의 위상은 2악장에서 제대로 발휘된다. 3악장은 박력이 넘친다. 두 악기가 대위적으로 움직이면서 화려한 패시지로 주고받는 대화가 듣는 이를 즐겁게 한다. 변화하는 리듬 속에 견고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 장조, Op.78
I. Vivace ma non troppo 아주 빠르게, 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II. Adagio 느리게
III. Allegro molto moderato 비교적 빠르게

밝은 듯 하면서 어둡고, 어두운 듯 하면서 밝은 브람스 1번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6/4박자의 1악장은 4분 음표를 3+3과 2+2+2로 분할한 리듬이 두 악기에 의해 함께 전개되며 악센트의 위치가 바뀌는 통에 절름거리는 느낌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어둡고 진지한 아다지오 2악장은 리듬의 전개가 모호하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느림이 아니다. 깊은 사색 또는 번민의 느낌이 강하다. 서정적인 '비의 노래'의 선율이 흐르는 3악장은 종종대는 빠르기의 걸음을 연속되는 부점 리듬이 멈칫거리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어느 한 가지로 채색되지 않는, 우울하고 복잡한 파스텔 색채가 여러 겹 덧칠된 것이 이 소나타가 만들어내는 그림이다.   

1-6 쉘 위 댄스 - 바흐에서 스트라빈스키로


 1-6 쉘 위 댄스 - 바흐에서 스트라빈스키로

음악과 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둘의 상관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과 공간이란 틀로 보면 인간의 예술 활동 중 시와 음악은 시간 속에, 회화, 조각, 건축과 같은 미술 활동은 공간 속에 존재한다. 춤의 경우는 좀 다르다.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존재한다. 춤에 대한 설명이 많다. <시경 詩經>은 마음에 피어오르는 생각을 말이나 노래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부지불식간에 수족이 움직이는 것을 춤이라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춤출 줄 모르는 것이 교육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여 춤과 음악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이성을 형성하고 완성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종교의식, 무속행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을 춤과 음악의 기원으로 보는 연구가 많다. 인생의 여러 단계를 축하하고 기릴 때, 또는 수렵, 파종, 기우, 전쟁과 관련한 행사의 일부로서 음악과 춤을 보기도 한다.
음악에 대한 설명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악기 樂記>에서는 인간 내면의 덕행을 행하게 하는 것이 음악이라 했고 음악이 백성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만든다고 했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사람 마음대로 만들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며 음악만이 영혼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동양에서는 음악이 개인의 의지에 영향을 주어 성격과 행동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에 방점을 두었고 서양에서는 수와 비례로서의 과학적 측면을 강조하여 음계와 음정의 확립에 기여했다. 소리를 한자로는 이렇게 구분한다. 성聲은 단순한 소리, 음音은 곡조를 이루는 것, 악樂은 연주를 하고 무용까지 더한 포괄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서구 문명의 근간인 고대 그리스어로 춤과 음악을 살펴보자. 안무, 무용술을 영어로 choreography라 하는데 이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의 코레우에인 choreuein은 집단 춤을 뜻하는 오르케시스 orchesis에서 유래했다. 오르케시스의 용례는 합창 chorus과 오케스트라 orchestra로 확장된다. 음악 music의 어원인 무지카 musica는 애초 음악, 무용, 무대 공연까지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이쯤 되면 음악과 춤, 춤과 음악을 분리하는 것이 되려 더 어렵다. 애초 하나였던 것이 두 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라고 봄이 타당하겠다. 서양음악의 발전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은 음악이 춤을 위해 봉사하는 단계에서 특정 춤의 양식을 정제해 양식화된 기악 음악으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춤-음악의 기능성이 약화되고 대신 음악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과정이다. 춤에서 비롯된 음악이 순수 감상의 목적으로 연주될 때 춤은 직접적인 몸놀림을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형태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악보에 적힌 음악이 연주자에 의해 해석될 때, 곡 제목으로서의 춤은 더 이상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대상이 된다.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부레, 미뉴에트, 왈츠, 타란텔라, 그 외 수많은 춤곡들은 양식과 형식으로, 양식의 파격으로,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자의 해석으로, 나아가 연주자의 해석과 청자의 교감이라는 다채로운 층위로 다가온다. 이런 면에서 바로크 이후 근대의 춤곡을 듣는 것은 고고학적 행위이자 두툼한 크레페를 잘라 촘촘한 단면을 보고 즐겁게 맛보는 호사이기도 하다.
바흐의 파르티타 1번은 네 개의 악장이 모두 춤곡 양식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립된 바로크 모음곡의 형식에서 지그를 부레로 바꾸는 파격, 악장마다 변주곡을 붙이는 변화가 독특하다. 바흐의 악보는 열려있다. 모든 세부사항을 엄격하게 따르라 지시하는 시방서라기 보다 시공사의 재량을 인정하는 설계도에 가깝다. 감정의 고조에 따라 확장될 수 있는 춤의 속성에 닿아있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모든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활발한 느낌으로는 으뜸인 22번 A장조의 1악장이 뒤를 잇는다. 이 곡의 2악장에는 절제된 감정의 변주곡이 등장한다. 현란한 몸놀림 대신 섬세한 손가락, 나풀거리는 옷자락이 인상적인 춤사위라 하겠다. 나직한 목소리가 우렁찬 웅변보다 더 설득력을 발휘할 때가 있는 법이다. 스트라빈스키를 <봄의 제전>, <불새>의 작곡가로 알던 이에게 '이탈리아 모음곡'은 꽤나 생경하다. <봄의 제전>보다 더 원시적이고 과격해서가 아니라 이 곡이 지닌 신고전주의적 단아함 때문이다. 이 곡이 잊혀졌던 페르골레지의 몇몇 악보를 토대로 만든 1막 짜리 발레 '풀치넬라'의 음악을 원전으로 하고 있음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로크 모음곡의 느낌을 주는 발레 모음곡, 20세기 감각으로 다듬은 18세기 음악. 그게 '이탈리아 모음곡'이다.
자 춤이 준비된 듯하니 그렇다면, 쉘 위 댄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1번 B 단조, BWV 1002
I. Allemanda - Double 알르망드 - 변주곡
II. Corrente - Double (Presto) 쿠랑트 - 변주곡
III. Sarabande - Double 사라방드 - 변주곡
IV. Tempo di Borea - Double 부레 - 변주곡

1720년에 작곡됐다. 바로크 모음곡의 양식을 따라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까지 이어지고 지그 대신에 부레가 등장한다. 각 악장의 끝에는 앞선 악장의 주제를 정교하게 세공하는 변주곡이 붙는다. 프랑스어의 두블레 Double는 변주곡을 의미한다. 레코딩에 따라서는 변주곡을 별도의 악장으로 보아 8악장 구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라틴어 격언에 'varietas delectat'란 게 있다. 뜻은 '다양함은 즐겁다' 정도다. 바흐가 파르티타 1번을 썼을 때 마음에 품었던 격언이 아닐까 싶다. 바흐 시대에는 작곡이나 연주에서 다양성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주어진 선율과 화성의 틀 안에서 어떤 장식을 더함으로써 다양성을 드러낼까 하는 것이 당대의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의 과제였다.
BWV 1004의 샤콘느에서 변주곡은 극도의 예술성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변주곡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이 파르티타 1번에서 먼저였다. 이 파르티타는 모든 악장에 변주곡이 붙은 유일한 파르티타이다. 이 변주곡들이 단지 주제의 변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화성의 틀 안에 있지만 쿠랑트의 변주가 아주 빠른 전개로 결론에 이르는 것처럼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런 특성을 가리켜 음악학자 요한 발터는 "시로 따지자면 보다 짧은 시어로 이루어진 별도의 연"이라고 했다. 지그로 끝나는 바로크 모음곡 형식의 일반적 모습 대신에 부레가 채용되었는데 특기할 일은 이 부레가 바흐의 전작품에서 변주곡이 붙은 유일한 부레라는 점이다. 변주곡이 시작되기 전의 악장은 다른 많은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2부로 구성된다. 두 번째 부분은 첫 번째의 반복인데 바흐 악보에 따르면 연주자의 재량에 따른 장식음 사용이 가능하다. 변주곡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파르티타 1번은 따라서, 다양성의 즐거움이 충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바흐는 네 개의 현으로 만들어진 독주 선율 악기로 다성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사실 그의 작품은 베스토프, 비버, 마테이스 등으로 이어진 기교 추구의 전통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다. 오히려 음악을 통한 교감, 내면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에서 다성음악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변주와 연주자의 재량이 그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결국 파르티타 1번을 감상하는 포인트는 네 개의 춤, 네 개의 변주, 그리고 여덟 번의 열린 가능성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22번 A 장조, K.305
I. Allegro di molto 아주 활발하게
II. Tema. Andante grazioso - Variations I-V - Variation VI. Allegro 주제. 느리고 우아하게 - 변주곡 1-5 - 변주곡 6. 빠르게

휘몰아치듯 시작하는 1악장은 활기차고 느긋한 두 개의 주제가 교차한다. 주제와 6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2악장은 '팔라틴 소나타'를 쓸 당시의 작곡가의 심경이 담긴 듯 하다. 자연스러운 멜로디 전개 속에 깊은 내면을 엿보게 하는 악상이 흐른다. 복잡한 심경을 간결한 시어로 전하는 천재 시인의 모습이다. 마지막 변주곡에 이르러 소나타 첫머리의 생동감이 소환되고 끝난다.
"모차르트 음악은 잘 쓰인 시와 같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만 간결하게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모차르트 음악은 정적에서 시작돼 고요함 속에 사라져 간다. 그래서 모차르트를 연주하려면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겸비해야 한다."
안네-소피 무터의 말이다. 음악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된다. 이 소나타는 씁쓸짭짤한 속마음을 밝은 표정 밑에 감춘 모차르트를 어른거리게 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1882-1971):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이탈리아 모음곡' (발레 음악 <풀치넬라>에서)
I. Introduzione 서곡
II. Serenata 세레나데
III. Tarantella 타란텔라
IV. Gavotta con due Varizioni 가보트와 두 개의 변주곡
V. Scherzino 작은 스케르초(농담)
VI. Minuetto - Finale 미뉴에트 - 피날레

당신은 바로크로부터 초기 낭만주의까지를 좋아하고 스트라빈스키를 <불새>와 <봄의 제전>의 작곡가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모음곡'은 어떤 불협화음으로 나를 불편케 할 것인가, 라며 내심 걱정할지 모른다. 스트라빈스키도 그랬다. 이 곡의 원전인 <풀치넬라>의 작곡을 의뢰 받았을 때 말이다. 러시아 발레단 총지배인인 디아길레프는 이탈리아 음악원과 도서관 등지에서 찾아낸 페르골레지의 악보(일부만 전하는 필사본을 포함해 그 시대 다른 이들의 악보도 섞여 있었다)와 시나리오를 들고 스트라빈스키를 찾아가 17세기 가면극 풍의 발레를  만들려 하니 이 악보를 토대로 곡을 써 달라고 했다. 스트라빈스키는 페르골레지를 <스타바트 마테르>로, 즉 비극적 장엄함의 작곡가로 이해하고 있었다. 혈기 왕성한(<봄의 제전>에 비추어보자면) 당대의 스타 작곡가가 이 제안을 탐탁지 않게 여겼음은 당연하다. 생각은 <스타바트 마테르>와 사뭇 다른 악보를 뒤적이면서, 또 피카소가 미술 담당으로 참여한단 얘기를 들으면서 바뀌었다. 

1900년대 초,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최고봉은 오페라와 발레였고 파리는 그 중심이었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피카소가 손을 맞잡은 것은 오늘날로 치자면 헐리우드 초대형 블록버스터 기획에 스필버그, 봉준호, 존 윌리엄스가 힘을 합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페르골레지의 악보에 현대적인 장치, 예를 들어 목관과 금관을 대조시키고 불협화음을 슬쩍 섞고 타악기의 음향 효과를 가미하는 식으로 새로운 탄생을 도모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고 전한다. 음악도 마찬가지. 그래서 음악회를 위한 용도로 여러 번 편곡되었다. 먼저는 관현악 모음곡으로, 이어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말이다. 바로크 모음곡처럼 우아한 가운데 타임머신 기능이 있는 베틀의 북이 17세기와 20세기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직조하는 느낌을 전하는 곡이다.  

1-5 연민 또는 흔들리며 피는 꽃

 


1-5 연민 또는 흔들리며 피는 꽃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슈베르트가 남긴 곡은 여섯이지만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검색하면 여섯에서 모자라거나 검색 결과가 없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출판 당시 이 곡들에 '소나타'가 아닌 다른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연주곡인 3개의 소나타를 작곡가는 자필 악보에 '소나타'라 적었다. 그러나 사후에 출판될 때는 규모가 작은 소나타란 의미의 '소나티나'로 그 표제가 달렸다. 같은 시기에 작곡된 D.574의 소나타는 '듀오'로 출판됐고 이후에 작곡된 두 곡은 각각 '론도'와 '환상곡'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슈베르트를 좋아하면서도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반열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생전이나 사후 백 년 넘도록 소수의 애호가 외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곡가들과는 왠지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사에서 그는 후원자와 스승 없이 자기 만의 예술 세계를 개척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자신의 작품으로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은 생전에 단 한 차례 있었을 뿐이다. 서른 한 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인 프란츠 그릴파처는 이런 묘비명을 썼다. "음악은 여기에 풍성한 보물과 그보다 훨씬 귀한 희망마저 묻었노라" 슬픔과 아쉬움이 가득한 표현이다. 동시에 오해의 소지도 있다. 젊은 나이에 죽었으므로 완숙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며 따라서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란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의 작품이 바흐, 베토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평가를 주저했다. 이런 일은 오늘까지도 일부 이어진다. 작곡가로서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그늘 아래에서 살았다.(실제 그는 베토벤의 장례식 행렬에서 횃불을 들었다.)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했던 베토벤을 죽기 일주일 전에야 겨우 만났던 그는 평소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베토벤 이후에 누가 감히 음악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슈베르트 자신이 냈다. 그가 베토벤 사후에 남겼던 위대한 작품들로 말이다.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 그는 가사를 다듬으며, 또 일기와 편지를 쓰며 많은 기록을 남겼다. 이 곡들을 쓰고 5년이 지난 7월에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꿈에서 본 글을 적는다.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슬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묘사일 수 있고 예술 앞에 선 그의 태도와 감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소나티나로 널리 알려진 첫 3개의 소나타는 1816년 3월과 4월에 쓰여졌다. 슈베르트의 나이 열아홉 때이다. 작곡가의 길을 반대한 아버지와 가난 때문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이, 가까운 친구에게 들려줄 목적으로 작곡을 이어갔던 이, 지척의 베토벤을 존경하면서도 수줍은 성격 탓에 찾아가지 못했던 이, 사랑은 힘들기만 했던 이가 슈베르트다.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으나 열아홉 슈베르트는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이었다. 한 해 전, 충격적인 가곡 '마왕'을 썼고 그때까지 12개 넘는 현악사중주 곡을 썼음에도 초기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은 풋풋함이 엿보인다. 아직 세상과 맞서기에는 어린 나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두렵기만 한 나이. 그 세월을 한참 지난 나이가 된 이들이 옛 시절을 되돌아보면 언뜻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곡은 우리들 어린 시절의 비망록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슈베르트의 청춘에, 또 우리들의 청춘에 연결된다.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 바이올린 소나타 1번 D 장조, D.384
I. Allegro molto 빠르고 생기있게
II. Andante 느리게
III. Allegro vivace 아주 빠르고 활기차게

슈베르트는 능숙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이 곡을 쓸 때까지 12개가 넘는 현악사중주를 작곡했을 정도로 바이올린과 현악기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쓰인 세 개의 다른 바이올린 소나타들과 함께 이 곡은 연주자의 높은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라기 보다는 친밀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악보에 "1816년 3월"이라 적었다. 초연에 대한 기록은 없다. 넘치는 악상이 자유로운 화성으로 펼쳐진다. 아마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모임에서 연주했을 것이다.

프란츠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 단조, D.385
I.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
II. Andante 느리게
III. Menuetto: Allegro 미뉴에트: 빠르게
IV. Allegro 빠르게

연민을 표현할 때 슈베르트가 즐겨 썼던 것은 A 단조이다. 이 곡은 D 장조의 1번 소나타보다 작곡가의 개성과 풍미를 더 갖고 있다. 1악장 시작에서 피아노의 갈망하는 듯한 노래를 바이올린이 격한 미사여구로 되받는다. 이어 서정적인 C 장조의 주제는 선율과 화음 모두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로지나 백작부인의 아리아 '아름다운 그 시절은 어디에'를 연상하게 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왼손을 중심으로 하는 대화가 F장조의 세 번째 주제이다. 슈베르트는 소나타 형식의 많은 악장에서 두 개의 조성을 썼지만 여기서는 세 개의 조성을 펼친다. 매혹적인 F 장조의 안단테 악장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F 장조의 미뉴에트 피날레를 떠오르게 한다. D 단조의 3악장은 전통과 다른 행보이다. 우울하면서도 우아한 마지막 악장은 1번 소나타의 마지막과 유사하지만 더 넓은 구조와 더 대담한 전개가 펼쳐진다. 절정의 순간에 포효하는 두 악기는 베토벤의 격정을 닮았다.

프란츠 슈베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G 단조, D.408
I. Allegro giusto 정확한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II. Andante 느리게
III. Menuetto: Allegro vivace 미뉴에트: 아주 빠르고 활기차게
IV. Allegro moderato 적당히 빠르게

1816년 4월에 쓴 이 곡에 슈베르트는 '소나타 III'라 적었다. G 단조 소나타는 A 단조 소나타와 많은 특징을 공유한다. 두 개의 주제가 아닌 세 개의 주제를 등장시키는 첫 악장, 모차르트에 대한 헌정과도 같은 안단테 악장, 빠른 미뉴에트와 한결 느슨한 랜틀러가 교차하는 3악장, 장대한 마지막 악장의 구조가 그러하다. 4악장은 회한 어린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오페라 코미크와 같은 대중적 선율로 바뀌면서 빠르게 밝아진다. '소나티나' 3부작은 "그래도 희망하자"로 마무리된다. 

1-4 가르치고 배우며 연결되다

 1-4 가르치고 배우며 연결되다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은 가르침과 배움으로 연결된다. 평생 독일을 떠난 적 없는 바흐다. 그가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저 멀리 멕시코의 민속 춤을 접한 것은 바로크 작곡가들이 모음곡 형식으로 묶어낸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흥겹게 춤 추는 무희를 위해 연주되던 음악은 기악을 위한 모음곡으로 정리되었고 바흐는 정제에 정제를 거쳐 티 없이 하얀 결정을 뽑아냈다.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는 영혼의 춤곡이다. 듣고 있노라면 하늘 저편으로 도약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바흐의 악보는 교육용으로 널리 퍼졌다. 베토벤이 바흐를 배우지 않았을 리는 만무하다. 빈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을 취하지만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당대의 어법에 안주하지 않았다. 스승인 살리에리에게 헌정되었지만 그가 취했던 길은 기존 체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흐의 길에 가까웠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는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취지가 분명하다. 단순하다. 그렇다고 쉽다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것으로 설득력 있는 흐름을 갖추려면 전체를 장악하는 힘이 있어야 하고 세부적인 것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2악장의 변주, 3악장의 마주르카에서 비틀린 유머감각을 발견한다. 베토벤 1번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조소라고도 한다. 정형 속에 숨겨진 개성이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안전하겠다. 이 점에서 프로코피예프는 베토벤을 계승한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D 단조, BWV 1004
I. Allemanda 알르망드
II. Corrente 쿠랑트
III. Sarabanda 사라방드
IV. Giga 지그
V. Ciaccona 샤콘느

흔히 하는 말로,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이고 신약성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라고 한다. 바흐와 베토벤은 바이올린 음악에서도 비슷한 비중의 작품을 남겼다. 구약성서를 이루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리고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 샤콘느는 가장 높은 보좌에서 가장 귀한 왕관을 씌울만한 작품이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아침마다 듣거나 연주하고, 모든 음악의 으뜸이자 더 이상 아름다운 음악은 있을 수 없다고 추앙하는 곡이다.
바흐가 누구를 위해, 어떤 이유로 작곡했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너무 어려워서 무대 위에 올려지지도 않았다 한다. 요제프 요아힘의 연주와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브람스가 격찬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음악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바흐의 아들들이 필사한 악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썼다고 하며 다른 선생들도 교재로 채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바흐의 음악은 교사와 학생, 학자들로 이어져 베토벤에게도 가 닿았다는 설명이다. 1814년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한 버터 가게에서 포장지로 쓰던 낡은 종이 뭉치 틈에서 이 곡의 자필악보가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과장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바흐의 첫 전기를 쓴 포르켈은 이 곡의 생명력을 아주 멋지게 묘사했다. “바흐의 선율은 결코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 그의 선율은 그것을 만들어 낸 자연 자체처럼 영원히 아름답고 영원히 젊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형식을 떠나 예술의 내적 원천에서 솟아난 선율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모든 것은  더욱 새롭고 신선하며, 마치 어제 갓 태어난 것 같다.” (포르켈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 강해근 번역, 한양대 출판부, p.89)
파르티타 2번은 모두 춤곡 양식으로 쓴 모음곡이다. 1악장은 프랑스에서 유행한 독일풍의 명랑한 민속 춤곡인 알르망드이다. 알르망드는 프랑스어로 '독일풍'이란 뜻이다. 16분 음표로 진행하며 전체적으로 각 성부를 반복하는 2부 형식이다. 2악장 쿠랑트는 프랑스어의 'courir(달리다)'에서 온 말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빠른 춤곡의 하나다. 17세기 중엽 이후로 고전 모음곡에서 알르망드 뒤에 놓였다. 셋잇단음과 점리듬을 대비하며 진행되고 2부 형식으로 구성된다. 3악장은 사라방드다. 페르시아가 기원으로 사전적인 의미는 "느리고 우아한 스페인 춤곡"이다. 3/4박자이고 2박에 강세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느린 부분에서는 여덟 마디 단위로 진행한다. 4악장은 15세기 영국의 지그 Jig라 불리던 전원풍의 춤곡에서 유래된 악장이다. 류트를 위한 모음곡들에 등장함으로써 고전 모음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양식으로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12/8박자로 제1부와 제2부의 처음은 8분 음표를 중심으로 진행하지만 이외의 부분에서는 16분 음표를 중심으로 진행한다.
대개의 고전모음곡은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로 끝나지만 파르티타 2번에는 샤콘느가 추가되었다. 비중으로는 앞선 네 개 악장을 합한 것보다 크다. 샤콘느 또한 바로크 시대의 춤곡 형식으로 4소절에서 8소절의 화성 모형을 반복하는 형태를 지녔다. 원래 17세기 멕시코 지역의 춤곡이었는데 식민 지배자인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크게 유행했다. 느린 3박자의 장중한 춤곡이다. 이 악장은 3/4박자이며 256마디의 큰 규모이다. 하나의 선율이 화성적, 대위법적 기법을 통해 여러 번 반복되며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한다. 세고비아에 의한 기타 편곡, 부조니에 의한 피아노 편곡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바이올린 소나타 1번 D 장조, Op.12-1
I. Allegro con brio 빠르고 씩씩하게
II. Tema con variazioni: Andante con moto 주제와 변주: 조금 빠르게 그리고 활기있게 
III. Rondo 론도

1-1의 베토벤 소나타 2번과 같은 시기에 작곡됐고 스승인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헌정되었다. 작곡 능력을 인정받아 경력 발전에 도움을 기대했을 거라는 평가가 있다. 빈 고전주의의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곡은 활기차며 당대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조성과 음조를 채용했다. 건반이 아닌 바이올린이 먼저 주제를 제시한다. 빼어난 피아노 연주자였으며 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자로도 활동했던 그 답게 고도의 연주기법이 1악장부터 드러난다.
1악장은 바이올린의 더블 스톱으로 주요 화음을 나타내고 피아노는 아르페지오로 급속한 진행을 보여준다. 당시로서는 전위적인 기법이었다. 2악장은 주제와 네 개의 변주로 이루어졌다. 활기차지만 악상은 차분하다. 대립각을 이루는 특색있는 변주들이 흥미를 끈다. 마지막 악장은 베토벤 특유의 유머 감각이 즐겁다. 장난기가 얹힌 활발한 론도이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D 장조, Op.115
I. Moderato 적당한 빠르기로
II. Andante dolce. Tema con variazioni 천천히 부드럽게, 주제와 변주
III. Con brio. Allegro precipitato 불처럼 강렬하고 저돌적으로 빠르게

1947년에 작곡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3악장의 소나타이다. 소비에트 연방 예술위원회가 재능있는 바이올린 학생을 위한 교육용 작품을 위촉함에 따라 만들어졌다. 따라서 기교적인 작품은 아니며 애초에는 한 명의 솔로이스트가 아닌 복수의 학생들이 유니즌으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무대 위에 올려진 것은 프로코피예프 사후 6년이 지난 1959년 7월의 일이다. 루지에로 리치가 모스크바 컨서버토리에서 연주했다.
고전 양식으로 쓰여졌으며 선율의 대부분은 온음계이다. 첫 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2악장은 주제와 다섯 개의 변주로 구성되었으며 마지막 악장에서는 마주르카 춤곡 특성이 드러난다. 

1-3 맥박은 힘차게 뛴다

 

1-3 맥박은 힘차게 뛴다

악장의 빠르기 표시를 보면 역동의 시간이 되리란 걸 짐작할 것이다. 작곡가들은 힘차게 뛰는 맥박으로 이 곡들을 썼다. 역동하는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불안함을 수반한다. 프로코피예프의 경우, 우랄산맥 근처 시베리아로의 피난은 전란으로부터이기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억압으로부터이기도 했다. 익살스런 대화, 차분한 대화 속에 묘한 불안함이 있다. 탄탄한 구조와 격정적 선율을 지녔지만 베토벤 4번은 어두운 분위기를 전달한다. 힘차게 뛰는 맥박 속에서도 언젠가 잦아들 생명, 또는 불가항력의 힘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이처럼 모차르트의 경쾌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두운 명조의 물감이 덧입혀진다. 유한함을 인식하면 지금의 맥박은 더 소중한 법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18번 G 장조, K.301
I. Allegro con spirito 빠르고 생생하게
II. Allegro 빠르게

1-2의 모차르트 소나타 21번에서 설명했던 '팔라틴 소나타'집의 첫 번째 곡이다. 바이올린과 건반을 위한 이전의 곡들과 달리 두 악기가 균형을 잡고 역할을 수행한다. 1악장은 건반의 뒷받침 속에 바이올린이 주제를 먼저 노래하고 건반과의 부드럽고 편안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2악장은 화려한 피아노로 시작해 중간부 이후에서는 바이올린이 악상을 주도하고 활기찬 기운 속에 곡이 마무리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바이올린 소나타 4번 A 단조, Op.23
I. Presto 매우 빠르게
II. Andante scherzoso, piu allegretto (A 장조) 스케르초 리듬을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 좀 더 경쾌한 빠르기로
III. Allegro molto 대단히 빠르게

1-2의 베토벤 소나타 5번과 대조를 이룬다. 5번이 양이라면 4번은 음이다. 어두운 분위기와 격정적 선율이 특징이다. 당대의 평론가들은 4번과 5번 소나타를 가리켜 "베토벤 최고의 작품"이라며 호평했다. 5번이 워낙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그늘에 가리어 있지만 독창성과 대담한 정신이 담긴 걸작이다.
1악장은 전체적으로 단조를 유지한다. 엄숙하고 격렬한 주제가 타란텔라 리듬에 실려 움직이며 그 힘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재현부는 간단하게 마무리된다. 2악장은 극적이고 격렬한 리듬이 특징인 스케르초를 느린 빠르기에 조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뿐사뿐 걷다가는 섬세한 변주가 이어지고 두 번째 주제가 피아노에서 시작해 바이올린의 푸가로 이어진다. 듣기에는 편해도 미묘하고 복잡한 전개이다. 3악장은 A장조의 2악장과 대조되는 A단조를 몇 번의 재현부에서 유지한다. 장조를 사용한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편안한 대화 끝에 불안정하고 우울한 기본 주제로 되돌아가 끝난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바이올린 소나타 2번 D 장조, Op.94
I. Moderato 보통 빠르기로
II. Presto - Poco piu mosso del - Tempo I 매우 빠르게 - 이전보다 약간 더 활발하게 - 처음 빠르기로
III. Andante 느리게
IV. Allegro con brio - Poco meno mosso - Tempo I - Poco meno mosso - Allegro con brio 빠르고 싱싱하게 - 이전보다 약간 더 느리게 - 처음 빠르기로 - 이전보다 약간 더 느리게 - 빠르고 싱싱하게

2차 대전을 피해 다른 소련 예술가들과 함께 우랄산맥으로 피신한 프로코피예프는 1942년 플루트 소나타 Op.94를 완성했다. 이 곡을 좋아했던 그는 당시 절친한 친구였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08-1974)를 위해 이듬해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로 편곡했다. 이것이 바이올린 소나타 2번 D장조이다. 그의 다른 작품과 달리 고전적 성향을 지니며 우아함과 기품이 넘친다.
1악장은 모차르트를 연상케 하는 경쾌함이 있다. 러시아 민요풍의 주제들이 전개된 후 도입부를 반복하며 끝난다. 생생한 피아노가 서주를 담당하는 2악장은 바이올린이 주요 주제를 제시하고 두 악기가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대화를 잇는다. 자장가 같은 새 선율을 바이올린이 들려주면 저음의 피아노가 이어받고 우수에 찬 바이올린 선율로 나아가다가 익살스런 대화로 바뀐다. 차분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3악장은 같은 선율을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차례로 아늑하게 엮어내고 꿈꾸는 듯한 분위기로 마무리하는 서정적인 악장이다. 4악장은 리듬감 넘치는 피아노의 화음 위에 열정적인 바이올린 연주가 첫 주제를 들려준다. 반복에 이어 부주제와 제2주제가 나타나고 애수에 넘친 주제가 다시 연주된 후 재현부로 옮겨가며 끝난다. 

1-2 봄은 즐겁다?

 

1-2 봄은 즐겁다?

오늘은 봄의 정서를 노래한다. 바이올린과 건반을 위한 바흐의 소나타 2번은 3악장을 제외하고는 내내 경쾌하다. '봄'이란 표제가 붙은 베토벤의 소나타 5번은 말할 나위 없이 밝고 풍부한 감정을 전달한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중 유일한 단조인 21번 소나타가 가운데에 위치한다. 봄이라고 내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 속에 가슴 저미듯 다가오는 슬픔도 있는 법이다. 새로운 삶을 즐기는 와중에 한때 함께 살았던 존재에 대한 추억이 불현듯 솟아난다. 봄은 여러 가지 색깔로, 많은 선을 그리며 다가온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BWV 1015

I. [Andante] 템포 지정은 없으나 느린 걸음걸이의 빠르기로
II. Allegro 빠르게
III. Andante un poco 보통 걸음걸이의 빠르기로
IV. Presto 매우 빠르게

바흐가 쾨텐에서 활동할 때 쓰여졌다.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썼던 때와 비슷한 시기이다. 소나타 2번을 비롯해 총 6개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가 하나의 작품집으로 발표되었다. 밝고 즐겁고 빛나는 느낌을 가진 2번이 가장 널리 연주된다.
바이올린의 우아한 행보로 1악장이 시작한다. 건반이 그 발걸음을 뒤따른다.  2악장은 빠르고 빛나는 악장으로 건반이 저음을 연주하는 가운데 바이올린이 생기 있게 노래한다.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어 쓸쓸하고 심각한 느낌을 전하는 3악장은 참으로 아름답다. 악장 전체를 통해 건반이 16분 음표의 분산화음을 펼치고 그 위에 아름다운 캐논이 진행된다. 4악장 프레스토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푸가의 2부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E 단조, K.304

I. Allegro 빠르게
II. Tempo di Menuetto 미뉴에트 풍의 빠르기로

1777년,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성화에 파리로 일자리를 찾으러 갔다. 한때 환호를 보냈던 파리의 청중은 더 이상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궁핍함과 객지 생활의 고단함 속에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아버지에 대한 원망,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22살 청년은 이 21번 바이올린 소나타를 쓴다.
바이올린 소나타라 부를 수 있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몇 개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관점에 따라 그 수는 26개에서 42개 까지에 이른다. 쾨헬 번호 6에서 15까지의 작품은 바이올린 반주가 있어도 되는 하프시코드 소나타라고 적혀있다. 바이올린과 함께 연주해도 되고 없어도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10-15번은 플루트와 함께 연주해도 된다고 쓰여있다. 쾨헬 번호 26에서 31까지의 작품엔 '바이올린 반주에 의한 여섯 개의 하프시코드 소나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더 이상 바이올린을 옵션으로 상정하지는 않지만 보조적인 역할임은 여전하다.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 選帝侯인 팔라틴의 부인 마리아 엘리자베스에게 헌정된 '팔라틴 소나타'집의 6곡이 바이올린 소나타라 불릴 수 있는 첫 작품들이다. 26개건 42개건 간에 바이올린과 건반을 위해 쓴 곡 중에서 유일한 단조의 곡이 21번 소나타다. 같은 시기에 쓰인 피아노 소나타 8번처럼 고독과 슬픔의 감정이 담겨있다. 바이올린과 건반이 대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듣노라면 회한의 기억과 위로가 교차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 장조, Op.24 "봄"

I. Allegro 빠르게
II. Adagio molto espressivo 느리고 매우 풍부한 느낌으로
III. Scherzo: Allegro molto 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IV. Rondo: Allegro ma non troppo 론도: 빠르게,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게

이 곡은 4번 소나타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다. 처음엔 하나의 작품 번호로 출판됐는데 서로 상반된 느낌이라 1년 후, 4번은 Op.23으로, 5번은 Op.24로 수정돼 재출판됐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밝고 아름다운 곡이다. 1악장의 화사한 느낌을 따라 '봄'이란 부제가 붙었다. 경제적 안정을 얻은 대신 청력 이상으로 고생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1악장 초입의 바이올린의 하강 음형은 바로크 시대부터 하나의 기법으로 정착된 것으로 '희망의 동기'라고도 불린다. 베토벤은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이 동기를 사용한다. 2악장은 피아노가 먼저 주선율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이어받아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으로 전개된다. 낭만적 아름다움이 충만하다. 3악장은 2악장과 4악장 사이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음계의 빠른 상승과 하강이 머리카락 날리는 봄바람 같다. 마지막 4악장도 피아노 제시하는 주제를 바이올린이 받아 변주하고 반복한다. 중간에 새로운 주제들도 같은 방식으로 연주되어 봄 기운에 취한 춤사위를 연상시킨다. 

1-1 시작하다

1-1 시작하다
점과 선 시즌 1의 시작은 '시작'을 주제로 한다. 바흐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첫 번째로 쓴 작품과 베토벤이 바이올린 소나타로 쓴 첫 번째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베토벤의 콘체르트자츠(바이올린 협주곡 C장조 WoO 5)가 함께 연주된다. 이 곡은 단악장의 미완성 곡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의 습작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것이다. 기악 작품의 연대기에 남긴 바흐와 베토벤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이들을 각각 '구약성서', '신약성서'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는 바이올린 구약성서의 첫 책이고 베토벤 소나타 2번은 바이올린 신약성서의 첫 책이다. 첫 책들로 시작하는 첫날이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1번 G단조, BWV 1001

I. Adagio 느리게
II. Fuga (Allegro) 푸가 (빠르게)
III. Siciliana 시칠리아나
IV. Presto 매우 빠르게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1001-1006 작품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바흐가 쾨텐 궁정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며 걸작을 쏟아내던 시기에 완성됐다. 이 작품집의 초고에는 '파르티타'가 그 당시 독일어권에서 통용되던 '파르티아 Partia'라고 표기되었으나 1879년 바흐 협회의 결정에 따라 이탈리아어인 '파르티타 Partita'로 변경되었다. 작품집에는 3개의 소나타와 3개의 파르티타가 있다. 소나타는 17세기 작곡 양식인 '소나타 다 치에사 Sonata da chiesa(교회 소나타)'를 따라 4악장 구성이고 파르티타는 다양한 춤곡 양식의 악장들로 구성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것은 1720년이나 출판된 것은 1802년에 이르러서다. 출판 후에도 한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1800년대 후반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이 무대에 올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800년대 중후반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요아힘이 연주하면서부터이다. 현재는 바이올린의 필수 레퍼토리로 자리잡고 있다. 
교회 소나타는 느린 서주, 빠른 푸가, 색채감 있는 느린 악장에 이어 빠른 마지막 악장의 얼개이다. 12개의 소나타로 구성된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작품 두 개가 대표적이다. 모두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악장 구성이다. 17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행에 뒤쳐진 양식으로 간주된다. 하이든이 라르고-알레그로-미뉴에트-알레그로 악장 구성을 초기 교향곡 몇 곡에 씀으로써 그 자취가 이어졌다.
바흐는 이 작품집을 통해 바이올린의 기교를 고도화하고 혁신했으며 독주악기로서의 바이올린의 위상을 정립했다. 후대의 작곡가들, 특히 외젠 이자이와 벨라 바르톡의 경우 이 작품집을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의 원형으로 받아들이고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이 작품집이 다른 바이올린 작품과 확연히 차별화되는 음악적 특징은 선율 악기인 바이올린에서 건반악기와 같은 입체적 음향을 발굴해내려 했다는 점이다. 바흐 당시 다성적 효과를 위한 바이올린 작법이 시도되었으나 오늘까지 남은 것은 바흐의 작품 뿐이다. 4개의 현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바이올린에서 다성부 음향을 만들어낸 것은 그의 뛰어난 음악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이로써 바이올린은 단선율악기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장중하고 경건한 1악장 '아다지오'는 2악장 '푸가'의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다. 2악장 '푸가'는 간결한 주제를 바탕으로 논리적이며 지적인 전개를 펼친다. 이 '푸가'는 후에 오르간과 류트를 위한 푸가 작품으로 개작되었는데 바이올린을 위한 곡 보다는 두 마디가 더 길다. 느리고 우아한 시칠리아 지방 춤곡풍의 3악장 '시칠리아나'에 이어 가볍고 열정적인 마지막 '프레스토' 악장으로 끝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12-2

I. Allegro vivace (A장조) 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
II. Andate, piuttosto allegretto (A단조) 보통 빠르기로, 좀 더 정확하게는 알레그로보다 조금 느리게
III. Allegro piacevole 빠르고 쾌활하게

세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들어있는 작품번호 12번의 두 번째 작품이지만 작곡 순서로는 가장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구성에 기교적인 면은 조금 덜 부각되지만 유연하고 익살스런 매력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6/8박자인 1악장은 왈츠와 유사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바이올린이 반주를 제공하고 피아노가 선율을 만든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의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에서 파생된 제 2주제가 나타나고 화려한 변조가 이어진 후 주제로 되돌아가 끝난다. 2/4박자의 2악장은 진지하고 우울한 분위기이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밀접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마지막 악장은 3/4박자의 론도(주제가 삽입부를 사이에 두고 반복하여 나타나는 형식)로서 장난기 다분한, 반복되는 주제가 펼쳐진다. 피아노로 끝이 나는 듯 하다가 바이올린이 마지막 한 마디를 더하겠다는 듯 음표를 추가하는 것으로 끝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C장조, WoO 5
베토벤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작품은 총 네 개이다. 작품번호 61의 바이올린 협주곡, 로망스 1번과 2번 그리고 1악장 도중에 미완성으로 끝난 이 작품이다. 한글 표기로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하나 독일어는 Konzertsatz로서 협주 악장이란 뜻을 갖고 있다. 베토벤이 바이올린 연주법을 배우고 본의 궁정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 주자로 활동한 이후인 1790년에서 1792년 사이에 쓰여졌다.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습작으로 여김이 타당하다. 협주곡으로서는 불완전한 작품이지만 바이올린 독주부의 화려한 기교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베토벤의 필적으로는 259마디의 조각만이 전한다. 여러 차례, 여러 사람이 상상력을 발휘해 뒷부분을 '완성'했다. 피아노와 함께하는 편곡은 빌프리트 피셔의 편집으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