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시즌 1의 마지막 무대다. 당연한 얘기는 피해야 마땅하나 마지막이니 만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무대는 청중이 있어야 빛이 난다. 환호건 야유건 사람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청중 없는 무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늘날엔 더더욱 그런 것이 으레 주인공이라 여겨지는 음악 작품과 연주자보다 청중, 그리고 그들의 반응이야말로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소주제로 묶여 무대에 올려진 곡들은 거의 예외 없이 대세에 편승하지 않고 시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즉각적인 환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작품들은 언제고 다시 볼 수 있는 걸작의 보좌 앞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 견딤으로써 힘을 얻었고 그 힘으로 말미암아 스러지지 않는 생명을 획득했다. 이제 도전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들의 새로운 해석은 청중에게 도전이 된다. 하나의 악보가 각기 다른 결과를 내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한 일이다. 어떤 책이 경전이 되느냐 여부는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담보했는가에 달렸다. 귀 밝은 사람들은 싫증을 잘 낸다. 빼어난 기교를 들려주더라도 이전의 다른 누구를 연상케 하는 연주, 하나의 레퍼토리를 언제나 똑같은 패턴으로 읽는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르면서도 설득력 있는 연주에 감동한다.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는 것은 기억 속 다섯 장의 음반과 다섯 번의 연주회란 돋보기를 들고 오늘은 어떤 새로운 얘기를 들을지 기대하며 무대를 바라보는 일이다. 합의가 필요하진 않다. 내 머릿속 이상적 연주와 결이 다르더라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으면 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면 자기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니 그건 틀렸다고 해도 틀린 주장이 아니다.
시작은 여느 때처럼 바흐다. 바로크로부터 고전을 향해 나아가는 가교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가슴 찢어지는 1악장부터 애써 옷매무새 다듬고 조사를 읽는 듯한 4악장까지 모두 단조다. 드뷔시의 소나타도 단조이긴 하나 슬픔이 아닌 열정과 향수가 매력적이다. 바흐를 깊이 존경해 6개의 무반주 솔로 소나타를 쓴 이자이는 그 네 번째를 크라이슬러에게 헌정했다. 기교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곡이다. 속주 바이올린의 거장 크라이슬러를 염두에 두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쇼송은 동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에게 '시' 한 편을 지어주었다. 출중한 기량이 필요한 난곡이다.
시민혁명으로 왕정이 뒤집어지고 산업혁명으로 부르주아가 귀족을 대체하고 과학혁명으로 상식이 엎어지던 시대였다. 아울러 큰 전쟁의 소문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균형잡힌 틀에 담아내기에 세상은 너무 크고 비틀리고 찌그러져 가고 있었다. 어떤 작곡가는 세기말의 낭만에 휩싸여 큼직한 함지박에 세상을 담으려 했고 다른 어떤 작곡가는 남이야 어쩌던 간에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겠노라 선언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가. 누가 감히 후자를 데카당트하다고 폄하할 것인가. 변화는 더없이 빨라졌다. 변함없는 고전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이나 체제에 도전하는 예술 행위에서 위안을 찾는 이가 공존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아티스트가 들려주고 싶은 것은 다른 걸 틀리다고 손가락질 말고 다르지만 함께 어우러지는 즐거움을 찾아보자는 얘기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5번 F 단조, BWV 1018
I. Largo 느리게
II. Allegro 빠르게
III. Adagio 천천히
IV. Vivace 아주 빠르게
건반이 바이올린을 보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두 개의 성부를 담당하는 트리오 소나타의 원형을 보여준다. 근대적인 듀오 소나타의 시발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내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이 담겼음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전해진다. 리듬의 변화 속에서도 애통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애통의 표현은 여러가지다. 간절한 기도, 애타는 슬픔, 영혼 구원의 소망, 남겨진 자의 외로움을 듣는 것 같다.
클로드 드뷔시(1862-1918): 바이올린 소나타 G 단조, L 140
I. Allegro vivo 빠르고 힘차게
II. Intermède: Fantasque et léger 간주곡: 환상적이며 가볍게
III. Finale: Très animé 피날레: 매우 활기차게
형식은 고전주의 소나타이지만 다양한 음계, 화음과 리듬을 사용함으로써 색채감을 강조하는 인상주의 경향이 분명하다. 드뷔시의 마지막 작품으로 초연에서 직접 피아노를 맡았다. 스페인풍의 주제가 채용되어 정열적 느낌을 전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대화를 나누기 보다 서로의 주장을 목청껏 외칠 때가 많다. 와중에 유머 넘치는 반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암으로 고생하던 말년의 작품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충만하다.
외젠 이자이(1858-1931):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4번 E 단조, Op.27-4
I. Allemande (Lento maestoso) 알르망드 (느리고 장엄하게)
II. Sarabande (Quasi lento) 사라방드 (느린 느낌으로)
III. Finale (Presto ma non troppo) 피날레 (아주 빠르게 하지만 지나치지 않게)
묵직한 힘으로 시작하는 알르망드 1악장, 피치카토와 현란한 아르페지오의 사라방드 2악장은 바흐의 향기가 진하다. 풍성한 더블 스톱 때문에 단선율 악기임에도 충만한 화성을 경험하게 한다. 2악장에는 비엔나의 낭만이 깃들어있다. 크라이슬러로 대표되는 오스트리아 전통에 대한 헌정이다. 난무하는(?) 더블 스톱에다 현기증 나도록 몰아붙이는 속주의 3악장은 경이롭다. 동시에 바흐의 빠른 악장들이 바로 연상된다.
에르네스트 쇼송(1855-1899):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시, Op.25
Lento e misterioso - Cadenza - Animato - Poco lento - Allegro - Tranquillo
느리고 신비롭게 - 카덴차 - 점점 활발하게 - 매우 느리게 - 빠르게 - 고요하게
외젠 이자이에게 헌정되었고 그가 초연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량이 중요한 곡으로 독특하고 교묘한 주법을 통해 정열과 우수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버전이 먼저 나왔으며 피아노와 함께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서정적 선율이 조성과 리듬의 현란한 변화 속에서 신비와 명상과 절정의 순간들을 그려낸다.